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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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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22. 2024

춥고 지겹지만 따뜻한 집콕 주말

미국생활 154-155일 차



한국에서는 미국 강추위가 크게 뉴스가 된 모양이다. 사실 뉴욕은 한국의 겨울에 비해 그렇게 춥지는 않다. 이번주 내내 최저 온도가 영하 8-10도 언저리였다. 춥기는 하지만, 이게 올 겨울 최대 한파라고 생각하면 특별하진 않다. (원래 뉴욕은 한국과 똑같이 (1) 대륙의 동쪽에 위치하고 (2) 위도도 비슷한 데다 (3) 서쪽에는 황해/ 오대호가 있어서 기후가 비슷하다고 한다.)


파란 점이 뉴욕이다. 우리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듯 북미 동쪽 끝에 있다. 황해랑 정확히 같은 위치는 아니라도 북서쪽에 오대호도 있고.


그래도 기숙사는 춥다. 여기는 중앙난방인 데다가 보일러가 아니라 라디에이터라서 바닥이 차갑다. 1년 뜨내기인 우리는 카펫을 사지 않아서 엉덩이가 좀 시리다. 그래서 땅바닥에 앉아 놀 때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앉는다.


안방이 추워서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기숙사 관리실에 확인 요청을 했는데, 일월 중순이 다 돼서야 와서 확인하더니 라디에이터를 바꿔줬다. 그런데 냄새가 나서 10일 넘게 방을 못 쓰고 있다 ㅋㅋ 관리실에서는 냄새가 해롭지 않다고 하고, 라디에이터를 나름 닦아도 봤는데 냄새가 잘 안 빠진다 ㅋㅋ 이제야 좀 나아지고 있어서 내일쯤부터 잘까 싶은데 그때쯤 추위가 끝난단다. 우리가 아직 여기 물정을 덜 알아서 라디에이터를 바꿔 달라고 했나 보다. 그 사이 우리는 평소 옷방으로 쓰던 쪽방에서 히터를 켜놓고 잤고, 거실 한 칸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거실. 이 옆에 테이블과 책장 하나가 있고 그 외 발디딜 틈은 없다 ㅋㅋ 하지만 뉴요커들은 다 이정도면 살만하다며 ㅎㅎ


아무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주말 이틀 내내 집콕하고 있다. 뚜벅이에 세 명 중 두 명이 노약자인 (아이 + 초기 임산부) 우리 가족은 이 추위에 나갈 재간이 없다. 좁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버틸 뿐이다. ㅋㅋ


남편과 나랑은 졸리고 지겨운데, 딸내미는 즐거운가 보다. 어제는 집 안에 오만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로봇을 만들었다. 물건을 차곡차곡 쌓더니 네임펜으로 박스에 얼굴도 그리고 요가매트로 머리카락도 만들어줬다. ㅎㅎ 오늘은 그 얼굴을 잘라내 달라고 하더니 또 가면을 만들어서 한참을 놀았다.


소싱부터 그림까리 딸내미 혼자 다 했다ㅋㅋ


남편은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고 나는 꾸벅꾸벅 조는데, 옆에서 사부작사부작 집도 만들었다가 역할놀이도 했다가 지치는 법이 없다. 혼자 자기는 엄마 고양이고 나는 아기 고양이고, 뱀이 오면 잡아먹고 호랑이가 오면 숨는데, 그걸 내내 영어로 조잘조잘 떠들었다. 문장도 이제 복잡한 형식도 구사를 잘해서 졸면서도 깜짝 놀랐다.


오늘 (일요일) 저녁에는 남편도 나도 너무 지겹고 딸내미는 계속 안 나간대서 농담으로 "엄마 아빠는 안 되겠다. 엄마 학교 가서 산책하고 올게. 너는 나가기 싫으니까 집에 있을래?" 했더니 "아냐 나는 엄마 아빠랑 있는 게 좋아. 엄마랑 아빠랑 번갈아 가면서 나가고 다른 사람은 나랑 집에 있어"라고 또박또박 얘기해 왔다. 어제는 "여기 오래 살았더니 한국 말이 잘 기억이 안 나"라고 하더니 한국말도 잘만 한다.


그리고 오늘 만든 가면 ㅋㅋ


갑갑함에 몸부림치면서도, 뱃속에 있는 둘째도 딸내미만 같으면 세상 소원이 없겠다는 얘기를 남편과 나눴다. 지겨워도 따뜻하고 좋은 주말이었다.


남편 덕에 한 시간 도서관에 나와서 일기 쓰는 중. 그래도 남편이 하루에 한번씩 나를 외출 시켜줬다. 집에 있어도 번거롭기만 하지 도움이 안되긴 하지만 ㅋㅋ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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