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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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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an 27. 2024

뉴욕 최고의 팬케이크? + 오페라 카르멘

미국생활 157일 차



브런치 약속 -> 개강 행사 -> 오페라. 놀 계획으로 가득 찬 날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빡빡한 일정이 됐다. 저녁에 독박 육아를 할 남편도 신경 쓰였지만 무엇보다 나 (초기 임산부)의 컨디션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날부터 컨디션이 괜찮아서 잘 버텼다. 역시 놀 때는 다 좋다. ㅎㅎ


첫 일정인 브런치는 아는 한국인 언니와의 약속이었다. 동갑인 아이를 키우고 있고 같은 회사 출신이라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연락하는 사인데 뭐가 바빠서 지난 학기에 한번 외식하고 두 번째로 외식을 했다. ㅎㅎ 또 학기가 시작하면 정신없을 거라 무조건 맛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맨해튼에서 팬케이크가 가장 맛있다는 곳을 찾아갔는데, 차이나 타운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에도 차이나 타운 식당들이 많이 쓰는 'Golden'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막상 가보니 한국식 퓨전 브런치 집이었다 ㅋㅋㅋ 주인이 한국 사람인지 메뉴에도 김치나 한국 후라이드 치킨 관련이 많았다. 팬케이크도 한국에서 많이 먹는 폭신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였다. ㅎㅎ 확실히 뉴욕에서 찾아보기 힘든 팬케이크긴 했다.


한국에서 많이 보던 비쥬얼 ㅋㅋ 맛도 비슷하다


한국 말고도 아시아 퓨전 음식이 많았다. 샐러드는 타이식 샐러드였는데 숙주, 당근, 양상추, 계란에 새콤달콤한 태국식 소스를 얹어 나와서 임산부 입맛에 딱이었다. 기력을 차리고 나면 집에서 꼭 해 먹어야지.


사이드로 아보카도에 치킨까지 추가 (치킨은 올릴 데가 없어서 사이드로 줬다 ㅎㅎ)


음식 맛들이 꽤 괜찮아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우리도 처음에 한 시간만 자리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겨우 제대로 된 한자리를 얻었다. 각각 겨울 방학 여행 얘기를 공유하고 내 임밍아웃도 하고 나니,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아닌 사람과 한국어로 수다를 떠는 게 일주일에 한 번 있기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도 생각만큼 그 대화가 귀하지는 않다. 외국에 나오면 이런 게 엄청 귀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신기했다. 늘 남편이랑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동기들과도 일상적인 대화는 불편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신기하다.


잠시 도서관에 갔다가, 개강행사에서 또 다른 친한 동기에게 임밍아웃을 하고 한 시간 내내 단 둘이 수다를 떨다가 (영어 수다가 불편하지 않다!), 아이 저녁을 먹이고, 오페라를 갔다.


언제봐도 멋진 밤의 링컨센터


링컨센터에서 The Metropolitan Opera가 하는 카르멘이었다. 오페라는 처음인데 정석을 보겠구나! 하고 기대를 하고 갔는데, 현대식으로 변형을 가한 오페라였다 ㅎㅎ 학교에서 한 학기에 한 번씩 뉴욕에서 하는 문화 행사표들을 할인가로 판매하는데, 그때 이름만 보고 클릭해서 샀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ㅎㅎ


커튼콜 할 때 무대 모습. 투우장이 배경인데 무대는 현대적이다 ㅎㅎ


내용은 바뀌지 않았지만 배경이 현대가 되고 보니 더욱 뮤지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음악이 생음악이고, 가사가 프랑스어고, 대화가 따로 없다는 몇 가지 오페라의 기술적 특성을 제외하고는 뮤지컬의 느낌이었다.


팸플릿을 보니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배경을 현대로 바꾸었다는데, 사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오페라를 보러 오는 거라면 나는 전통적인 느낌이 좋을 것 같다. 현대식으로 바꿀 것 같으면 배경만 바꾸는 게 아니라 카르멘과 돈 호세를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던지.


오페라 전용 극장이라 좋은 점들이 몇 개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좌석마다 있는 자막 기계였다. 프랑스어 공연이라서 좌석 앞에 작게 번역 자막을 보여주는 기계가 있었다. 공연을 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되 볼 수는 있게 적정한 밝기로 자막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번역이 필요한 음악극을 보았을 때는 무대 옆의 화면에서 자막을 보여줬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옮기면 자막을 볼 수 있으니 훨씬 편했다. 글이 너무 길어도 곁눈질로 읽기 힘들어서 그런지 번역도 신경 써서 짧게 한 것 같았다. 프랑스어 공연을 편하게 보는 나를 보며 오페라 전용 극장의 힘을 느꼈다. 이런 오페라 전용 극장이 유지될 수 있는 뉴욕 문화의 힘도.


사진 아래처럼 앞좌석 뒤에 바가 있고 거기에 작은 스크린이 있다. (사진 출처: wordpress.com)


오페라는 인터미션 (중간 쉬는 시간)이 45분이나 됐다. 45분 동안 혼자 뭘 하나 싶었는데, 화장실 줄이 아무리 길어도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고 원하면 바에서 한잔 할 수도 있었다. 층마다 바가 하나씩 있고, 바마다 줄이 엄청 서 있었던 것도 인상 깊었다. 임산부만 아니었으면 샴페인 한 잔 사 마셨을 것 같다. 그래도 공연장 자체가 워낙 예뻐서 넋 놓고 있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너무 예쁜 오페라 하우스 내부


현대극이라 약간 아쉬운 것도 있었고, 한 표라 3층에서 봐서 TV 보는 느낌도 조금 있었지만 ㅎㅎ 그래도 오페라를 잘 경험해 보았다. 연주나 노래도 다 좋았고. 할인표를 살 때 로미오와 줄리엣, 투란도트도 구매해 놔서 남편과 번갈아 가며 볼 생각이다. 그 두 가지는 전통극이라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오페라가 끝나니 밤 11시였다. 임산부에게 강행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드물게 컨디션이 좋을 때 잘 놀았다. 안정기가 되면 학기가 한참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테고, 또 아이를 낳고 나면 한동안 삶이 없을 테니 ㅎㅎ 놀 수 있을 때 틈틈이 놀아놔야겠다.


요건 오페라 인터미션 때 바의 모습 ㅎㅎ 마시고 싶다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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