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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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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Feb 05. 2024

학부모의 하루_오픈 클래스룸+점심 나들이

미국생활 164일 차



수업이 없는 날이었지만 나름 바빴다. 아침부터 아이 학교 오픈 클래스룸이 있었고, 머나먼 이스트 빌리지에서 아는 언니들과 (모두 3-4살 딸내미 엄마들) 점심 약속이 있었다. 점심 약속은 일주일 전에 잡은 거였는데, 그때만 해도 8주 차라 조금 더 살만 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일주일 전의 내가 약간 원망스러웠다. 적어도 동네로 잡을걸 ㅋㅋ


요새는 밤이면 소화가 안 돼서 괴로워하다가 자정이 넘어야 자고, 아침에는 9시가 되어야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아이 등원은 남편이 독박을 쓰고 있는데, 오픈 클래스룸은 8시 20분에 시작이라 좀비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모닝 엽산 먹은 후 속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아침까지 챙겨 먹고 몸도 안 움직여서, 8시 등원은 못 쫓아가고 8시 20분 오픈 클래스룸에 맞춰갔다. ㅋㅋ


오픈 클래스룸의 퀄리티는 점점 올라간다. 아이들이 최근 건물 만들기를 해서 그걸 주로 보여준다는데, 우선 아이들이 만든 설계도부터 나눠줬다.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건물을 보기 전에, 아이들과 건물에 대해서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질문 예시도 제공해 줬다. 이런 활동들은 담임 재량이 많은 것 같은데, 담임 선생님이 멋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무료로 다니는 공립 pre-K가 이 정도라니 진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기가 만든 눈사람도 보여주고 ㅎㅎ


딸내미는 진짜 뉴요커가 다 된 게, 딸내미가 만든 빌딩은 여느 뉴욕 빌딩처럼 비상계단도 포함하고 있었다. 빨리 적응해 준 게 기특하면서도, 한국에 돌아가면 또 엄청 큰 변화를 맞이하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무한 사랑과 신뢰를 주는 수밖에 없겠지.


동그라미 친 곳이 비상계단 ㅎㅎ


집에 오자마자 아침 9시부터 급하게 낮잠을 수혈하고, 이스트 빌리지로 향했다. 맨해튼에서 가장 평이 좋은 태국 음식점이지만, 지하철을 갈아타고 40분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진짜 임신 8주 차에는 체력이 아직 남았었나 보다 ㅋㅋ


그래도 식당은 좋았다. 분위기도 힙했고, 음식도 남달랐다. 여기도 태국 음식점 하면 팟타이나 똠얌꿍, 뿌빳뽕 카레(게 카레)가 보통인데 좀 더 메뉴들이 다양했다. 우리나라도 동네 태국 음식점 메뉴는 다 비슷비슷하지만 압구정 같은 곳을 나가면 좀 특이하게 하는 곳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뭔가 힙하다


가지 속을 무쳐서 튀긴 계란과 함께 낸 샐러드, 새우와 죽순이 들어간 노란 카레, 오리 가슴살을 엄청 부드럽게 삶아 올린 매콤한 그린 카레, 다진 돼지고기 및 샐러드를 올려서 마른 향신료들과 비벼 먹는 국수를 시켰다. 기본적으로 새콤달콤한 베이스는 똑같지만 (그래서 맛이 엄청 새롭지는 않지만) 들어간 재료 구성들이 새로워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힙한 식당답게 차림새도 좋았고 ㅎㅎ 양이 많아서 어떻게 다 먹나 했는데, 나중에 리치 샤벳과 망고 스티키 라이스까지 디저트로 잘 먹었다. 나들이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도 수다도 즐거웠다.


가지샐러드 플레이팅 보소. 위에는 튀긴 계란이다



뉴욕 레스토랑들이 유명한데, 지난 학기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많이 못 다녔다. 이번 학기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도 좀 다녀 봐야겠다. 십 년 전쯤 전부터 가고 싶었던 파인 다이닝도 두 곳 정도 있는데, 언제 뉴욕에 또 살아볼까. ㅎㅎ 여긴 물가가 힘들어서 같이 외식할 사람도 없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가끔 만나는 한국인 엄마들도 그렇고, 남편조차도 외식은 혼자 하라고 하니. 진짜 혼자라도 가봐야겠다. ㅎㅎ


멀리 이동하고 뉴욕에서 애 키우는 어려움을 폭풍 토로하느라 식사 후엔 완전히 뻗었는데, 간신히 힘을 차려 나온 김에 장도 보고 들어갔다. 오늘 하루는 (실제로는 피곤했지만) 여유 있는 학부모의 하루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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