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162-163일 차
일요일도 월요일도 딱히 한 게 없다. (심지어 일기도 일주일이 밀렸으니 말 다했다.) 요새는 정말 느리게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느리게 산다기보다 꿈속에서 산다고 해야 하나. 틈만 나면 자고, 자고 나면 입덧이나 먹덧 때문에 뭐 먹을까 or 먹지 말까를 궁리하며 하루를 다 보낸다. 아마 이번 학기 내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목표치를 낮추고 느린 학기를 보내려고 한다. 뉴욕에 온 목적은 그게 아니었지만, 뭐 인생이 그런 거지 뭐. ㅎㅎ
토요일에 동네에서 열린 친구 생일잔치에 참석만 했는데 정말 뻗었다. 그래서 일요일은 남편이 전담 육아를 해주었다. 집돌이인 남편이 관성대로 집에 있으면 애와 치대다가 지겨워서 싸울게 눈에 선해서, 표를 사고 도시락을 싸서 자연사 박물관을 가라고 등 떠밀어 보냈다.
다행히 남편도 아이도 재밌어해서 아침에 준비되는 대로 갔는데 문 닫을 때까지 놀다 왔다. 아이가 스스로 잘 있어서 남편도 구경을 많이 했단다. 불과 한 달 전에 같이 박물관을 갔을 때도, 내가 애를 주로 데리고 있어도 남편이 늘 구경을 못해서 아쉬워했기 때문에 내심 놀랐다. 애들은 진짜 순식간에 큰다.
게다가 저녁에는 남편이 나에게 자기가 본 걸 설명하려 하는데 아이가 "아빠 잠깐만 있어봐 내가 설명할게" 하더니, 자신만의 언어로 아빠가 설명해 준 얘기들을 내게 전했다. 양막이 생긴 후 동물들이 알을 육지에 낳을 수 있게 되었다던지, 꽤 어려운 얘기들인데 일일이 기억하고 전해줘서 또 놀랐다.
나는 남편이랑 아이가 그렇게 재밌게 놀다 오는 동안 자고 숙제를 조금 했던 것 같다. ㅎㅎ
월요일도 숙제를 조금 하다가 수업 갔다가 낮잠 자다가 그러면서 하루가 갔다. 몽롱하다. 여기가 뉴욕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뭐 나쁠 건 없는데 벌써 지겹다. 대체 임신 초기는 왜 이렇게 안 지나가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