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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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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Feb 18. 2024

갈렌타인 저녁 모임

미국생활 180일 차



수요일 밸런타인을 기점으로 모임/ 파티가 두 개나 잡혔다. 둘 다 갈렌타인, 밸런타인을 기념해 여자들끼리만 만나는 자리였다. 오늘은 여자 애들끼리 수업을 마치고 가는 저녁 약속이었다.


여기는 물가가 진짜 비싸서, 웬만하면 친구들끼리 만나도 커피 혹은 술을 한 잔 하지 밥을 먹는 일은 드물다. 이번에도 저녁 6시 40분 수업을 마치고 가는데도, 투표를 통해 술을 한 잔 할지 저녁을 먹을지 정했다.


다행히 저녁이 꼽혔고, 학교 근처 치고는 평이 좋아서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안 식당에 가게 되었다. 따로 의상 콘셉트가 있었던 건 아닌데, 갈렌타인이라고 다들 나름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꾸미고 왔다. 귀여운 친구들 ㅎㅎ 나는 애초에 그런 색깔 옷이 없는데, 밸런타인데이에 괜히 분홍 네일 스티커를 붙였어서 그나마 묻혀 갔다.


한국에서 젤네일 스티커를 몇장 가져왔는데 이런 날 깨알 같이 잘 쓴다 ㅎㅎ 미국엔 진짜 이런게 괜찮은게 잘 없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었을 텐데 여기서는 당연히 각각 파스타 하나 음료 하나씩 시켜서 각자의 음식만 먹었다. 다른 사람 거 한 입만 이런 건 없다. ㅎㅎ 나는 미트볼 포모도로 파스타를 먹었는데, 꽤 높은 평에 비해서는 그냥 한국의 괜찮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느낌이었다. 역시 우리나라 식당이나 카페가 수준이 높다.


그래도 남이 해 준 밥은 언제나 옳다. 다음날은 입덧하면서 저녁해서 가족들만 먹이고 나는 맨밥 한 입 먹었다. 애 데리고 뚜벅이로 나가 사먹는 것도 만만찮지만 진짜 사 먹어야지 ㅠ



갈렌타인이긴 해도 특별한 건 없었다. 8명의 친구들이 이 조합 저 조합으로 수다를 떨다가 1시간 20분 정도 만에 헤어졌다. 말이 1시간 20분이지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서 정작 음식 먹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렸다. 애들이 배가 고파서 그런지 다들 후룩후룩 잘 먹었다. 파스타 양이 우리나라의 1.5배 정도는 됐는데, 다들 싹싹 비워서 나도 덩달아 먹었다가 배가 너무 불러서 혼났다.


흠 음료도 그냥 보통이었다.


여기 애들은 평소에 점심은 에너지 바 같은 걸로 조금씩 먹는데, 기회가 되면 몰아서 먹는 건지 자리가 있으면 진짜 많이 먹는다. 나는 여전히 끼니때 맞춰서 밥 먹어야 하는데... 얘네는 비싼 물가에 맞춰 위가 진화한 것 같다.


학교 근처라 파스타 가격은 20불 정도로 저렴했지만, 거기에 음료에, 팁에 세금까지 더하니 인 당 5만원 정도 나온 것 같다. 계산할 때 조금 흥미로운 대화가 있었다. 여기는 더치 문화가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식당에서 테이블 당 결제를 2-3번 이상 나눠 받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보통 해주는데 여긴 아예 식당에 그렇게 안내가 붙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한 명이 계산하고 보통 1/n을 한다. 그래서 나도 음료는 딱히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발 맞춰서 시켰고. 


그런데 보니 나중에는 음료를 안 시킨 사람도 몇 있었고, 뒤늦게 디저트를 포장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명이 결제하고, 각각 먹은 것 + 세금과 팁 1/n 한 것을 그 사람에게 보냈다. 나는 처음 해 본 방식이었는데, 뉴욕 출신이 아닌 아이들이 당연히 이렇게 하는 건데 뉴욕에서는 1/n을 하더라면서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다. 다들 먹은 음식 가격도 다르고 음료 갯수도 다른데 라며. 같은 더치페이라도 지역마다도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른 모양이었다. 


껴준게 고맙다 ㅋㅋ 사진으로 보면 좀 칙칙해보이지만 다들 외투가 새빨간 색이거나 했다.



나는 철저하게 나눠서 계산하는 뉴욕 외 방식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기왕 더치를 할거고, 어차피 한국 처럼 같이 나눠 먹는 것도 아니면, 그게 확실한 게 아닌가 싶다. 주류도 한 잔에 2만원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인당 가격 차이가 많이 날텐데. 뉴요커들은 더치 페이 속에서도 나름 쿨한 척하느라 그런가 ㅎㅎ 재밌는 얘기였다.


이렇게 새로운 얘기도 하고, 지나가면 아무 것도 기억에도 안 남는 얘기로 시시껄렁하게 얘기도 하고, 속도 맞춰서 먹고 ㅎㅎ 시간이 갔다.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고 같이 모여 밥 먹는 게 귀엽고 재밌었다. 여기 와서 작은 기념일들을 부쩍 많이 챙긴다. 시간 여유가 있는 학생이라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문화적인 차이인 것 같다. 여기는 진짜 무슨 날이 많다. 번거롭기도 하고 쓰레기도 많이 나오지만 ㅎㅎ 그래도 그런게 나는 재밌다. 잔재미도 있고 기억도 남고. 앞으로 어디에 살든 이런 걸 좀 더 챙기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경제적 심적 여유가 우선 있어야 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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