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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10. 2024

뉴멕시코여행 2일 차_240309

미국생활 204일 차



뉴멕시코에서 가장 상징적인 교회 안에 들어가니 굉장히 오묘한 빛깔의 대리석이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대리석이 전반적으로 옥색을 띠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대리석 색깔이고 다른 장식들과도 굉장히 잘 어울려서 한참을 바라봤다.



역시 오래된 교회라 귀한 자재를 썼나 하고 가까이 가보니 대리석이 아니라 나무에 칠을 한 것이었다. 간혹 나무가 갈라진 자국들이 있었다. 대리석의 마블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색칠해서 멀리서 봐서는 몰랐다.


그 교회의 가짜 대리석처럼 뉴멕시코는 건물이나 자재에 예쁘게 칠해둔 경우가 많았다.


뉴멕시코 대부분의 건물은 모랫빛이다. 옛날 건물이야 어쩔 수 없이 가장 흔한 모래로 지어서 그랬겠지만 요새 지은 고가도로 등도 다 모랫빛이다. 여기서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모래 색깔이 된 것 같다. 모래색 건물들만 가득하면 자칫 칙칙할 수도 있을 텐데,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아기자기하게 색칠해서 굉장히 귀엽다.


사막에 꽃 풍경이라니 ㅎㅎ


그리고 (특히 옛날 건물들의) 그러한 자원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져 좋다. 미국에 와서 늘 괴리감을 느끼는 부분이 이 나라는 뭐든 너무 풍부하다는 거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서 긴 옷을 입고, 겨울에는 히터를 너무 틀어서 배꼽티를 입는다. 재활용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음식물도! 도토리나 조/ 기장 같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먹는 음식은 여기선 동물 사료였다. 너무 쉽게 낭비하는 이 나라가 참 낯선데, 그런데 모래 건물과 나무에 예쁘게 색깔을 입혀놓은 뉴멕시코의 건물들을 보니 드물게 친밀감을 느꼈다.


어젯밤 뉴멕시코에 올 때 비행기가 교체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1시간 40분만 연착되어 새벽 2시에는 뉴멕시코 앨버쿼키 공항 근처 호텔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뉴욕 시간으로 치면 새벽 4시였던 터라 오늘은 크게 무리할 계획이 없었다.


조식을 먹고 앨버쿼키 올드타운을 구경 갔다. 오래된 교회와 작은 중앙 광장, 주변의 작은 향신료/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했다. 날씨가 기가 막혀서 슬렁슬렁 다니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온도는 뉴욕이랑 비슷한 5도 언저리였는데, 햇빛이 하도 좋아서 쌀쌀한 느낌도 없었다. 여름이면 엄청 따가운 햇살이라고 느꼈겠지만. 이번 여행을 앞두고 유모차를 구비한 덕에 아이가 (피곤하면 유모차를 타면 되니) 유독 잘 있어준 덕도 컸다. ㅎㅎ 중간에는 낮잠이 들어서, 남편과 작지만 멋진 앨버쿼키 박물관 선인장/ 조각 공원도 구경하고, 햇빛 받으며 올드타운 벤치에서 앉아 쉬다가 샵도 구경하고 할 수도 있었다.


하늘보소


점심도 맛있었다. 뉴멕시코는 19세기까지 멕시코였기 때문에 멕시코 음식이 주류다. 그래도 지역적 특색이 좀 있어서 이곳 음식을 뉴멕시코 음식이라고 따로 분류해서 부른다. 그린/ 레드 칠리를 거의 모든 음식에 쓴 게 특징인데, 우리가 점심때 간 식당도 뉴멕시코 음식이었다.


뉴멕시코에 남은 가장 오래된 가정집 중 하나를 개조한 곳이라 건물도 멋졌고 음식도 좋았다. 남편과 나는 뉴멕시코 대표 음식 Carne adovada와 Old rellenos를 먹었다. 앞의 것은 돼지고기를 매콤한 소스에 푹 조린 스튜 같은 음식이었는데, 생각보다 묵직하지 않아 의외였다.


Carne adovada. 엄청 맵다고 했는데 우리한테는 괜찮았다 ㅎㅎ


여기 음식의 특징인가 싶기도 한 게, 두 번째 요리는 큰 칠리 안에 고기를 넣고 튀겨서 역시 레드칠리나 그린칠리소스를 곁들인 음식이었는데 그것도 튀긴 것에 비해서는 묵직한 느낌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고추장 소스라고 하면 묵직하고 진득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의 매콤한 음식은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우리 매운 음식이 묵직한 건가 ㅎㅎ


Old rellenos, 튀긴 고추 요리 하나는 레드칠리, 하나는 그린칠리를 썼다.


이곳은 얼마나 매운 음식이 압도적인지, 메뉴판에 있는 거의 모든 음식에 레드/ 그린 칠리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뉴멕시코주의 차량 번호판에도 칠리 그림이 들어가 있다.) 아이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아이들 메뉴가 따로 있었다. 불과 7.99 달러에 소고기 소프트 타코 2개와 빈, 토마토소스 쌀요리를 함께 주었는데 타코가 짭짤한 게 의외로 아이가 잘 먹어 기뻤다. 아이는 타코를 처음 먹어본 줄 알았는데, 토르티야에 소고기와 치즈만 얹어져 나오니 옆에 곁들여 나온 양상추를 그 위에 얹었다. 반드시 타코에 야채를 얹지는 않지만 미국의 대중적인 타코에서는 그렇게 많이 먹는다. 학교에서 먹어본 건가… 나도 모르는 새 아이는 더 미국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7.99 달러! (세금/팁하면 14000원이지만 뉴욕에선 생각도 할 수 없는 가격)


점심을 먹고 나니 거의 2시 반이었다. 우리는 기진맥진했지만 낮잠도 푹 자고 배부르게 먹은 아이는 더 놀다가 가겠다고 했다. 어딜 갈까 하다가 랜덤 하게 강변 주립공원을 갔다. 주요 관광지도 아니라 딱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좋았다. 뉴올리언스 여행을 갔을 때는 습지 투어를 가서 새로운 자연을 봤다면, 여기는 황폐한 사막의 강가를 보았다. 분명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강이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는데, 새들은 좀 있는데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강의 이름은 리오 그란데, 큰 강인데 실상은 좀 넓은 구간의 탄천 만했다. 그리고 강가인데도 바로 주변이 얼마나 메말랐던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3월 초라는 걸 염두에 두더라도 너무 황량했다. 중간중간에는 오늘 산불 위험도가 매우 높다는 경보가 붙어 있었고, 뭘 모르는 내가 봐도 강가 바로 옆 나무도 순식간에 타버릴 만큼 말라 있었다. 정말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사막이 아니라도 사막 지형을 이런 데서 느낄 수 있구나 싶었다.


진짜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할 황량함


우리는 의외로 굉장히 즐거웠는데 아이는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3시여서 계속 5시까지는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아이는 그게 불안했나 보다. 중간중간 계속 몇 시인지, 집에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더니, 호텔에 돌아와서는 사실 공원에서 내내 무서웠다고 했다. 우리는 중간중간 시간을 체크했을 뿐인데 아이에게는 그런 어른의 작은 모습도 큰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다음부턴 더 많이 신경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4.5년 차인데도 아직 배운다. (20년 차가 돼도 배울 것 같긴 하지만 ㅎㅎ)


호텔에 와서는 모두가 피곤해서 비상식량으로 싸 온 컵반 등을 먹고 뻗었다. 이제 배가 더 불러오고 아이까지 낳으면 장기여행은 몇 년간 어려울 것 같고, 뉴올리언스 때 남편은 많이 힘들어해서 이번 여행지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하루 다녀보니 잘 온 것 같다. 역시 여행은 원래 살던 곳과 다른 곳으로 갈수록 더 감상이 많아진다. 새삼 ‘뉴올리언스 때도 이렇게 색다른 느낌이었지’라고 작년 뉴올리언스 여행도 떠올리게 된다. 막판에 남편과 싸운 기억만 남아 있었는데 이번 뉴멕시코 여행 덕분에 다시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더 기쁘다. ㅎㅎ


아이한테 저녁에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었더니, 분명 올드타운을 볼 때는 “여기 예쁘다. 여기처럼 예쁜데 또 보러 가자”라고 했으면서 공원에서 긴장한 기억 때문인지 재밌는 게 없었단다. (그러면서 여행 온 건 좋단다 ㅎㅎ) 내일부터는 국립공원이다! 하얀 모래사막에서 썰매도 타고 하면서 더 재밌게 놀아보자. ㅎㅎ


오늘 점심 먹은 식당 앞. 올드타운은 건물들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며칠 후 갈 산타페는 더 예쁘다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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