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06일 차
어제 화이트샌즈에서 하도 재밌게 놀아서 오늘은 딱히 기대를 안 하고 갔다. “굳이 갈 필요 없는데 딸내미가 또 가고 싶다니까 또 가지 뭐.” 정도의 마음으로 느지막이 준비해서 10시쯤 들어갔다.
그런데 진짜 재밌었다 ㅋㅋㅋ 어제는 화이트샌즈를 탐험했다면 진짜 오늘은 제대로 물고 뜯고 즐겼다. 처음에는 어제처럼 주차장 주변 언덕에서 모래놀이로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탐험을 시작했고, 둔덕을 4개쯤 넘고 평야를 3개쯤 넘어 까지 갔다. 지금은 성수기라 그런지 주차장 주변 언덕은 모두 발자국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그 정도 가니 발자국도 없었고 우리가 언덕 일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남편이 달리기를 시작하니 딸내미가 따라가고, 나도 따라갔다가 풍경이 너무 좋아 멍 때리고 있다가, 썰매도 없이 언덕 급 경사면에서 슬라이딩을 했다가, 딸의 제안으로 셋이 같이 스노우엔젤을 그리다가 했다. 딸내미 덕분에 나도 아이처럼 화이트샌즈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쯤 놀고 나니 1시, 딸내미도 지치고 우리도 지쳐서 마침내 나왔다. 선글라스도 모자도 잊어버리고 우산 하나 들고 가선 새까맣게 불태웠다. 다신 안 가도 되겠다 싶을 만큼 후회 없이 놀았다. ㅎㅎ
화이트샌즈를 만드는 데 일조한 찢어진 산맥과 (산맥 두 개가 찢어진 사이의 분지에 화이트샌즈가 생겼다.) 뉴멕시코에서 놀랍게 푸릇푸릇한 링컨 국립 숲과 엄청난 황야를 지나 칼즈배드로 왔다.
어제 3시간 40분을 운전해 와서 그런지 3시간 거리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운전한 남편 생각은 다를지도 모른다…ㅎㅎ) 지금까지 3박은 모두 박 당 100불 (13만 원) 정도의 inn에서 숙박했는데, 오늘은 230불 (31만 원) 정도의 호텔에서 묵는다. Inn에 있을 때는 그때 대로 나쁘지 않네 싶었는데, 호텔에 오니 역시 좋다. 확실히 쾌적하고, 온탕이 있는 수영장이 있어서 오자마자 딸내미는 수영장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모른다. ㅎㅎ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수영장을 엄청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못 데리고 갔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 수영복을 가지고 온 걸 보고 좋아서 여행 기간 내내 수영복을 낮에는 자기 가방에 들고 다니고 잘 때는 머리맡에 두고 자고 했다. 일반 수영장은 아직 춥고 온수풀은 너무 더운 것 같은데도 어정쩡하게 나올 생각을 안했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돈 써서 온수풀 수영장 있는 곳으로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내일은 칼즈배드 동굴에 간다. 입장 예약을 해야 하는데 전에 봤을 때는 엄청 여유가 있길래 넋 놓고 있다가 예약을 까먹어 버렸다 ㅠ 내일 표가 매진인데, 인터넷을 보니 문 여는 시간(8시)에 들어간 몇 명은 들여보내준다고 한다. 내일은 4시간 반 짜리 이동도 있는데 본의 아니게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게 되었다. 여러모로 내일도 잘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