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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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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13. 2024

뉴멕시코여행 5일 차_칼즈배드 동굴_240312

미국생활 207일 차



칼즈배드 동굴에 들어갔다! 예약을 미리 못했는데 티켓이 매진돼서, 못 들어갈까 봐 나도 남편도 아침부터 조마조마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서둘러서 오픈 시간 즈음 매표소 앞에 섰는데 어찌나 긴장했던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남편도 긴장을 해서는, 자기 심박수를 보라며 스마트 워치를 보여주는데 심박수가 100을 넘어섰다. (평소에는 60-80이다.)


심박수 100. 우리 차례가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심박수가 104까지 올라갔다 ㅋㅋ


일부러 아이를 안고 매표소 앞에 서서 긴장되는 목소리로 예약을 못했는데 혹시 표를 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표를 받았다 ㅠㅠ 매일 여분의 표가 조금은 있는 모양이었다. 매표소 직원은 동굴 보존을 위해 입장인원에 제한을 둔다며, 우간다에서 관광 온 가족이 못 들어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다 이룬 느낌이었다 ㅋㅋ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보려고 화이트샌즈에서 3시간을 달려왔고, 오늘은 또 산타페로 다시 5시간 가까이 운전해 가야 하는데 표를 못 구했으면 오후의 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입장 시간까지는 1시간이 떴는데, 칼즈배드 국립공원 입구는 엄청난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있어서 거기서도 한참을 사진 찍고 즐겼다.


주차장 앞 피크닉 공간 풍경이 이정도


우리가 간 빅룸 투어는 크게 빅룸까지 걸어서 내려가는 내추럴 엔터런스(약 1시간 소요)와 본진인 빅룸(약 1.5시간 소요) 두 코스로 나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00피트에 위치한 빅룸 입구까지 갈 수도 있고, 내추럴 엔터런스를 통해 걸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와 쉴 수 있고 딸내미 나이에도 충분히 간다는 직원 안내를 믿고 두 군데를 다 가기로 했다. 다만 후반부에 체력이 떨어질 것을 고려해 순서를 바꿔 빅룸부터.


벽에 있는 길이 내츄럴 엔터런스, 아래 있는 모형이 빅룸이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길도 평탄하고 걸으면서 동굴 내부를 구경하는 빅룸에 아이는 큰 관심이 없었다. 졸리다 어둡다 하며 평소보다 칭얼댄다 싶더니, 중간 지점에서 즈음 잠시 아빠한테 업힌 사이 바로 잠들었다. 아무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설치느라 자기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중간중간 쉬었다고 해도 아이를 업어야 했던 남편이 좀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우리끼리 동굴을 좀 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도 이런 동굴에 와본 게 처음도 아니고, 그냥 보기만 하는 건 체험하는 것보다 감흥이 덜 한 데다, 아이 때문에 신경도 쓰여서 들어올 수 있었던 데 방점을 두고 구경하고 나왔다.


동굴 자체가 멋지긴 멋졌다.


아빠 등에서 한참을 잔 아이는 이내 쌩쌩해졌다. 공원 내 푸드코트에서 샌드위치까지 사 먹이고 났더니 기력이 넘쳤다.


내츄럴 엔터런스로 출발


그리고 향한 내추럴 엔터런스는 꽤 재밌었다. 지상에서부터 빅룸까지 탐험해 내려가는 형식이었는데, 아이는 자기가 탐험가가 된 양 즐겼다. 사진을 찍으려고 뒤 따라가니 먼저 내려가서는 막 손을 흔들고, 핸드폰 플래시를 달라고 해서 어두운 곳을 비춰보곤 했다. 아이가 신나 하니 우리도 좋았고, 우리도 비슷한 기분으로 즐겼다. 아까 본 빅룸도 한참을 걸어 내려가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원래는 아이가 있어서 내추럴 엔터런스는 안 볼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사실은 동굴보다 불빛에 비친 자기 손가락 그림자가 신기한 딸내미 ㅋㅋ


동굴 쪽에서 공원 입구로 내려오면서 잠깐 풍광도 즐기고 하니, 칼즈배드 국립공원을 나설 때가 이미 오후 2시였다. 오늘 숙박할 산타페까지는 4시간 40분이 찍혔다. 원래는 중간에 한두 번 쉬어갈 예정이었는데, 중간 휴식지도 마땅치 않고 점심도 샌드위치를 먹어 저녁은 제대로 먹자 싶어서 곧장 내달렸다. 중간에 주유 2번 (남편이 실수로 경차를 빌리는 바람에 기름도 자주 보충해줘야 한다. ㅎㅎ),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1번을 빼고는 쉬지 않고 달렸다.


길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400킬로를 조금 넘게 달리는데 거의 한 고속도로로 직진만 하면 되었다. 보통 한 고속도로를 타는 일은 있어도, 400킬로를 직진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제와 엊그제도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경치는 볼만큼 봤다 싶었는데 그래도 새로운 풍경들이 있었다. 저번에는 엄청난 크기의 태양광 발전 단지가 있더니, 이번에는 굉장한 규모의 풍력 발전 단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햇빛 아니고 바람도 세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땅이 온톤 붉은 곳도 있었다. 엊그제는 땅이 온통 검은 돌로 덮인 지역도 있더니. 아무튼 자연경관이 풍부한 나라다.


뭘 하든 규모가 엄청난 이 곳…


남편은 이번 여행에서 이런 여러 가지 풍광과 국립공원들을 접하면서, 미국에서 콘텐츠를 접할 때 왜 토양이나 자연 관련된 한국어로도 낯선 단어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다양한 자연환경에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게다가 국립공원마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도구들이 많다. 화이트샌즈와 칼즈배드 둘 다 주니어 레인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면 주니어 레인저 책자를 주는데, 국립공원 관련된 액티비티들이 귀엽게 담겨있다. 그걸 하다 보면 그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나이대마다 책자가 나뉘어서 나름 난이도 조절도 하고 있다. 그 책자를 다 풀고 나면 나무로 만들어진 멋진 배지를 준다. 배지의 기본 모양은 같은데 모양이 두 개 국립공원이 달랐다. 우리가 봐도 모아보고 싶게 생겼다. 실제로 만 15살은 되어 보이는 애들이 성심성의껏 주니어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 걸 보면 딸내미에게도 더 많은 국립공원을 체험시켜 주고 싶은 생각도 마구 들었다.


차에서 더워서 겉 옷을 벗는데, 딸내미는 깨알같이 주니어 레인저 뱃지를 챙겨서 내복에 달았다.


남편과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와 스티커 붙이기도 했다가 공주 놀이도 했다가 간식도 먹였다가 틀린 그림 찾기도 했다가 수다도 떨었다가 하면서 열심히 왔다. (결국 마지막 한 시간은 졸리다고 엄청 울어서 처음으로 차 안에서 동영상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국 산타페에 잘 도착했다. 남편도 놀랍게도 운전 내내 한 번도 졸지 않았고, 내가 내내 교대하자고 해도 운전석을 지켰다. 호텔에 체크인하니 7시 반, 근처 식당에서 빠르게 저녁을 사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가 칼즈배드 입장과 산타페 이동이었고, 두 가지 고난이 오늘 하루에 모두 포진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잘 마쳐서 진짜 마음이 편하다. 내일은 이동 없이 산타페에서 여유롭게 있을 예정이고 심지어 운전할 필요도 없이 모두 걸어 다닐 수 있는 일정이다. 호텔도 괜찮은 곳을 잡았더니, 옛날식 고풍스러운 건물에 방 안에 벽난로도 있다. 벽난로에 불타는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 있자니 절로 여독이 풀리는 느낌이다. 내일 하루 중간에 쉬어가는 일정을 넣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가만 있어도 절로 힐링되는 소리


이번 여행도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다. 내일 잘 쉬고, 마지막까지 잘 지내다 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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