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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14. 2024

뉴멕시코여행 6일 차_산타페_240313

미국생활 208일 차



인터넷에서는 산타페를 갈 거면 굳이 앨버쿼키 올드타운을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산타페가 앨버쿼키 올드타운 상위 호환 버전이라고. 하지만 산타페를 와보니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나는 앨버쿼키 올드타운은 조금 더 날 것의 느낌이 있었다면, 산타페는 정돈된 고급 예술 도시 느낌이라 전혀 다르다. 앨버쿼키에서는 친밀감을 느꼈다면, 여기는 갤러리 문화나 예술 도시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건물 하나하나가 정돈되었고 깔끔하다


산타페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함께 미국의 3대 미술품 시장이라고 한다. 나는 왜 그럴까 싶었는데, 조지아 오키프 박물관을 다녀오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이 차고 넘치는 뉴욕에서 특별전을 해도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는 조지아 오키프는 말년에 뉴멕시코를 집으로 삼아 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조지아 오키프 박물관이 있다.


유명하단 건 알았지만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딸내미가 2시간은 족히 유모차에서 자 준 덕에 갈 수 있었다. 딸내미는 어제 10시 반이 다 되어 자고도 아침 6시에 일어나 우리를 깨우더니, 샵 몇 군데 구경하고 나니 뻗었다. 샵에서 각종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서 “와 정말 예쁘다”, “I like it!”, “나 예쁜 거 정말 좋아”, “우리 다음 주에 여기 또 오자”를 남발하더니 잠투정도 없이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산타페는 2도 정도로 날씨가 추워서 아이 데리고 바깥을 계속 돌아다니기도 그래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런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진짜 많다.


막연히 조지아 오키프 하면 확대해서 관능적으로 그린 꽃 그림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삭막한 뉴멕시코와 그 작가를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이런 커다랗고 다소 재해석된 꽃 그림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뉴멕시코를 와서 이곳의 아기자기한 컬러감을 구경하고 나니, 조지아 오키프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뉴멕시코의 예술은 황폐한 자연 배경과 제한적인 자원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밝은 느낌이 있는데, 조지아 오키프 작품도 보다 보니 밝고 화사한 느낌만은 아니어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크 아이리스나 홍합 그림 같은 건 묘하게 어두운 감이 있어서 자꾸 눈길을 끌었다.


다크 아이리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은 특유의 여성스러운 컬러감이 있었다. 황폐한 산을 보라색과 분홍색을 이용해 그려낸 그림이 있었는데, 나도 뉴멕시코에서 비슷한 산을 보았는데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색깔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감탄했다. 괜히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 황무지를 이렇게 그릴까


남편도 직관적으로 잘 그렸고 (우리 부부는 둘 다 현대 미술에 약하다) 묘한 표현으로 시선을 끄는 데가 있는 조지아 오키프 작품을 즐겼다. 전혀 계획한 일정이 아니었는데 대성공한 기분이었다. 아이도 전시를 다 볼 때 즈음 깨 주었다.


점심에는 추천받은 식당에 갔다. 어제저녁에 왔다가 2시간 반을 대기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을 기약했던 곳이다.


나는 감자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그린칠리 스튜와 돼지고기 타말레(속재료를 옥수수 가루 반죽으로 감싼 후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 잎으로 싸서 조리한 요리)를 먹었다. 나는 그린 칠리가 진짜 마음에 든다. 그 과하지 않은 매움과 은근한 개운함이 좋다. 그린칠리 스튜는 그린칠리가 주라서 그런지 고기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묵직하지 않고 매콤하고 개운했다.


그린칠리스튜. 또 먹고 싶다. 상도 받은 스튜라는데 진짜 맛있다.


타말레는 원래 옥수수 간 것의 향 때문에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시켜봤는데, 위에 얹은 칠리소스가 시판이 아니라 말린 칠리를 갈고 직접 만들어낸 맛이라서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매우면서 말린 고추의 깊은 맛이었다.) 좋았다.


남편의 엔칠라다(토르티야로 속 재료를 감싸 튀긴 후 소스를 얹는 요리)도 역시 콘 토르티야는 향이 조금 힘들었지만, 소스가 깊은 맛이 나서 좋았다. 딸내미도 어린이 브리또를 좋아했고. (이곳의 어린이 브리또는 밥이 아니라 콩을 넣은 경우가 많다. 신기하다.)


제일 앞이 타말레 (아직 옥수수 잎을 벗기지 않은 상태, 제일 멀리 있는게 엔칠라다다.


원래 점심을 먹고는 성당 한 군데를 들렀다가 갤러리 거리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싸락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두 군데만 얼핏 훑어보고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기껏 갤러리거리 까지 갔다가 후퇴…


남편과 번갈아 가며 잠깐씩 쉬면서 아이와 호텔 로비에서 놀았다. 호텔은 건축물 자체도 내부 인테리어도 뉴멕시코 전통 양식이라 굉장히 멋지다. 방도 온통 원목 가구에 진짜 불이 나오는 벽난로가 있는데, 로비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서 진짜 나무 때는 걸 보며 불멍도 하고, 구비된 애플 사이다도 마시며 아이랑 노는데 아이가 참 좋아했다. (호텔에 오자마자 “나 호텔에서만 놀아도 돼?” 묻더니 “나 여기 호텔 좋아” 이런다.)


호텔 로비


산타페를 생각한 만큼 못 본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랑 남편도 체력보충을 하고 아이고 잘 놀아서 좋았다. (마지막 날 어차피 반 일이 비어 다시 올까 싶기도 하다.)


저녁도 잘 챙겨 먹었다. 다른 유명한 식당을 갔는데, 나는 궁금했던 메누도(Menudo), 소 곱창 수프를 먹었다.


메누도


아직 입덧이 조금 남아 있는 임산부가 너무 과감했다. 곱창을 푹 삶은 것에 포솔레(큰 옥수수알)가 담겨 나왔다. 곁들여 나온 레드 칠리와 레몬즙, 오레가노를 듬뿍 뿌렸는데도 비렸다. 원래 내장을 잘 안 먹는 남편은 오히려 이제 엄청 맵고 향신료 향만 나서 괜찮은 것 같다고 했는데 나는 냄새가 났다.


다 섞으니 이런 색깔이 되었다.


쫄깃한 맛에 곱창만 몇 개 먹다가 남편의 그린칠리 버거와 토르티야 수프를 뺏어 먹었다. 그린칠리는 그 아주 약한 매운맛과 개운한 맛이 버거랑도 진짜 잘 어울린다. 토르티야 수프도 개운했고. 여기서 많이 먹는 튀긴 빵인 소파피야도 함께 먹었는데, 얇은 튀김 빵에 꿀을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뉴욕에 돌아가도 소파피야와 그린칠리는 생각날 것 같다. 뉴멕시코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이곳의 음식 탐방이었는데, 그것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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