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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17. 2024

뉴멕시코여행 7일 차_밴덜리어_240314

미국생활 209일 차



남편은 오늘을 뉴멕시코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칭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일주일 넘는 여행은 너무 피곤하다고 해놓고 ㅎㅎ


오늘은 밴덜리어 국가기념물 (Bandelier national monument)을 방문했다. 밴덜리어는 11,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구멍이 많은 화산 지형에 사람들이 구멍을 파고 집을 삼아 살던 유적이다. 튀르키예의 유명한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형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다가 미국에도 그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큰 구멍이 출입구, 중간 구멍들은 창문들이다.


밴덜리어 주변이 다 화산지형이라 들어가는 길부터가 장관이다. 구멍이 송송난 거대한 암벽들을 곁눈으로 보며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사슴도 튀어나오고 (로드킬을 피하려던 앞 차와 충돌할 뻔했다 ㄷㄷ), 더 올라가다 보면 암벽이 눈앞에서 출렁출렁 흐르는 듯한 모습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사진으로는 이 감동을 전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밴덜리어에는 여러 트레일 루트가 있는데, 우리가 택한 곳은 가장 메인인 메인 트레일 + alcove house였다. 왕복 2시간 여 거리의 트레일로 오가며 풍경도 즐기고 여러 모양의 집 유적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하이킹하는 기분으로 휘적휘적 길을 나섰다. 들어가 볼 수 있는 동굴집은 모두 일 미터 이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걱정했는데, 딸내미는 씩씩하게 올라갔다. 이 자식 오기 전까지 동굴은 안 들어간다더니 ㅎㅎ


잘도 올라간다


심지어 마지막에 alcove house는 43미터 높이의 암벽에 있어서 가파르고 긴 사다리를 세 번이나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딸내미가 올라갔다 ㄷㄷ


남편이 먼저 올라갔고, 내가 고민하다가 다음에 올라갔었다. 임산부가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니 나도 긴장이 되는데, 더 긴장되는 건 딸내미가 올라올까 봐서였다.


저 위의 큰 구멍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거다!


딸내미가 계속 올라가고 싶어 했는데 나야 막았지만 남편은 아무래도 데리고 올라올 것 같았다. 그래서 올라가서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내려오는데… 첫 번째 사다리와 두 번째 사다리 사이에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말려도 하나도 소용이 없고, 아이가 아까 낮은 사다리를 올라간 모양이나 남편이 보호하는 걸 보아 못할 건 아닐 것 같아서 끌고 내려가진 않았다. 하지만 아래서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저 위에서 아빠한테 안겨 신나서 엄마를 부르는 딸내미… 난 이 때도 긴장이 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려오는게 더 위험하단 말이다…


나랑 같이 올라갔다 내려온 어떤 미국인 할머니는 나는 저 어린애가 저기 올라가는 모습은 심장 떨려서 못 본다며 서둘러 돌아갔다. 나는 보는 내내 심장이 떨려서 수명이 몇 년은 줄어든 것 같다. 그래도 딸내미는 어떻게든 올라갔다 내려왔다. 마지막에는 올라가려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박수도 거나하게 받은 딸내미는 의기양양해했다. 잘했다고는 했지만, 진짜 이러다 익스트림 스포츠라도 한다고 하면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내려와서는 타오스로 향했다. 타오스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오스 푸에블로 (부락)이 있는 곳이다. 가는 길에는 High road to Taos라는 경치 좋기로 유명한 길을 거쳐 갔다. 역시나 엄청난 평야와 멋진 산맥을 보며 갈 수 있었다.



지난 일주일 간 많은 경치를 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타오스는 우리가 그간 돌아다닌 뉴멕시코 남단보다는 훨씬 북쪽에 있는 곳이라 풍경이 달랐다. 남쪽보다는 조금 더 습기가 있는지 건조 지역 식물인 것 같긴 했지만 식물들이 많이 보였다. 넓은 황무지만 펼쳐진 것과 거기에 바짝 말라 보이는 식물들이 수도 없이 펼쳐진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조지아 오키프의 뉴멕시코 그림 중 약간 낯설었던 그림까지 이제는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이런 그림들. 남쪽에서는 풀을 상상하기 힘들다.


타오스에서는 유명한 로지 (산장)에 묵었다. 오래된 곳이지만 관리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산타페에서 묵은 곳도 오래된 지역 호텔이라 느낌이 색달랐는데, 여기는 더 했다. 산타페 호텔에서 방 안에 진짜 불이 있는 가짜 벽난로 (가짜 목재가 있고 실제로는 가스로 타는)를 보고도 신기해했는데, 여기는 아예 우리가 방 안에서 나무를 떼게 되어 있었다.


신난 두 사람…


신난 남편과 딸내미를 보고 약간 불안했는데, 결국 방 안에 있는 나무를 다 땔 때까지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ㅋㅋ 자꾸 나무를 추가한다고 벽난로를 들쑤시니 방 안이 연기로 가득 차고, 영하의 날씨에 환기를 하고, 나무는 금방 타고의 연속이었다. 이 사람들 ㅋㅋ 딸내미에게 불장난하면 밤에 쉬한다고 알려줬지만, “아빠는 많이 쉬하고 나는 조금 쉬하겠네!”라고 즐거워했다. 이 자슥 ㅋㅋ 그래도 연기가 나니까 달려와서 나와 뱃속의 아이한테 연기 안 가게 하겠다고 열심히 부채질 해준 건 놀랍고 귀여웠다. 신기한 구경도 좋지만, 이런 게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인 것 같다. 여행 동반자와 아기자기한 추억 쌓기 ㅎㅎ


저녁은 타오스의 유명 로컬 식당에서. 이 곳의 칠리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맵고, 타닌감 비슷한 식감이 좀 덜했다. 이제 칠리 맛을 슬슬 알 때가 된건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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