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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r 23. 2024

MET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_240319

미국생활 214일 차



지난번 카르멘에 이어 두 번째로 Metropolitan (MET) 오페라를 보러 갔다. 이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카르멘은 (젊은 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으로) 무대를 현대식으로 꾸미는 바람에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지고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정극이라 좋았다. 나 같이 오페라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어설픈 현대화보다는 정극을 경험하는데 오히려 더 가치를 느끼지 않나 싶다.


정극인데 중세의 있는 집 자식들이 배경이다 보니 ㅎㅎ 무대도 의상도 더 화려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페라 자체도 뮤지컬에 비해 정적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배우들 움직임도 많아 지루하지 않았고,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고 좌석 앞의 영어 자막도 있어서 볼만했다.


싼 표라 엄청 멀지만 ㅋㅋ 저번 카르멘 보다 가운데 쪽 자리라 볼 만 했다. 다음부턴 딸내미 쌍안경을 가지고 다녀야지…


그러고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대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곧 애 둘 아줌마에게 둘의 감정은 너무 격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ㅋㅋ 하룻밤 만에 사랑에 빠져서 이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같은 표현을 하고, 둘 만의 결혼을 하고 사랑 때문에 죽고 하는 게 모두 5일 만에 일어나는 일이었다니.


처음에는 '그래도 보다 보니 아주 예전에 남편과 설레던 시절(!!)도 생각나고 재밌네' 하며 보다가, 나중엔 그 빠른 감정의 전개를 못 따라갔다. '얘네들이 왜 이러나, 인생 하루 이틀 살고 말 것도 아닌데...', '부모님들은 어쩌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ㅋㅋ 집에 와서 찾아보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번안본이고 원본과 다른 번안본들도 있는데, 총 9개월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는 다른 번안본들에 비해 5일 만에 진행되는 속도감이 인기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요즘 드라마도 속도감 있는 전개를 좋아하는데, 이 것도 (나는 못 따라갔지만) 그런 맥락으로 인기가 있었나 싶었다.


오페라 배우들의 공연도 좋았다. 역시 MET의 주연 배우들 답게 감정이 굉장히 섬세하고 표현을 잘했다. 하지만 남자배우가 약간 소리가 갑갑한 구석이 있었던 데 비해, 줄리엣은 파워까지 좋아서 그 부분이 비교가 많이 됐다. 각자 솔로를 할 때도 비교가 되었는데, 같이 듀엣을 하니 더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요 배우들인가보다. 워낙 멀리서 공연을 봐서 얼굴은 첨 본 느낌 ㅋㅋ


집에 와서 보니 평론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다. 정극 오페라 공연이 처음인 데다가, 하필이면 오기 전에 이런저런 일정이 많았어서 공연을 보며 엄청 피곤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느낀 만큼 느껴서 뒤늦게 안도감이 들었다. ㅋㅋㅋ


다만 미리 노래를 들어보고 가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카르멘은 오페라가 처음인 나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지 못했다. 내용을 아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오페라의 메인은 노래라 그런지 내용을 아는 것보다 노래를 아는 게 훨씬 오페라를 따라가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남편이 투란도트를 보러 갔는데 바로 조언해주었다. ㅎㅎ


오페라도 잘 보긴 했지만, 링컨센터에 공연을 보러 오는 것 자체가 참 좋다. 일단 밤에 혼자 문화생활을 하러 나온다는 기분이 좋고, 어딜 봐도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뉴욕에서 탁 트인 링컨센터 앞마당에 서서 예쁜 분수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링컨센터 내에 멋진 샹들리에도 예쁘고, 엄청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들떠서 서로 막 찍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사진 찍어주기 품앗이를 하는 것도 좋다. (중간에 샴페인을 사 먹을 수 있으면 더더욱 좋겠지만... 출산 이후를 노려본다.) 오페라를 반드시 또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링컨 센터 공연은 맨해튼을 떠나기 전에 또 한두 번 올까 싶다.


언제봐도 예쁜 링컨센터 앞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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