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18-9일 차
남편은 하프 마라톤 출전 차 일박이일로 필라델피아에 갔다. 원래는 딸내미와 나도 같이 갈 예정이었지만, 아무래도 뉴멕시코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되어 일박이일로 또 떠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말았다.
대신 맨해튼에서 나대로 달렸다 ㅋㅋ 이틀간 각각 5시간씩 외출 강행군을 했다. 임신하고 애랑 단 둘이 이렇게 장시간 외출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각각 플레이 메이트가 있었다. 대화 상대가 되어 준 어른도 있었고, 아이도 절반은 친구랑 놀았지만 어쨌건 기진맥진했다. 남편은 매일 아이 학교 마치고 3시간 조금 넘게 아이랑 놀다 오는데, 새삼 고생이 많다 싶었다.
그래도 임신하고 아이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었는데, 컨디션이 좀 나아질 무렵 해서 단 둘이 이런 시간을 보낸 것도 좋은 것 같다. 아이도 밤에 잠들 때 한 번 아빠를 찾기는 했지만, 내내 알콩달콩 잘 지냈다.
아이도 평소보다 고생을 했을 텐데 잘 있어주었다. 남편은 엄한 듯하면서도 아이를 많이 도와주는 편인데, 나는 그럴 체력도 안되고 아이가 할 수 있는 한은 아이가 하자는 주의라 평소 아빠가 해주던 일들도 다 아이를 시켰다. 아이도 '엄마는 요새 힘들다'가 잘 입력되어 있어서 그런지 ㅎㅎ 크게 찡얼거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주었다. 오르막에서 킥보드를 타는 일이라든지, 자기가 나중에 먹을 시원한 물을 냉장고에 챙겨 넣는 일이라든지 다 알아서 했다. 고마웠다.
특히 오늘은 멕시코 시티에 사는 전 직장 동료가 뉴욕에 여행을 와서 그 가족과 센트럴 파크에서 만났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햇빛도 쐬고 센트럴 파크 산책도 하고 좋았다. 봄이 오려는지 나무에 새 잎들이 돋아나고, 목련 몽우리가 지고, 개나리가 만개해서 좋았다.
세상 활발한 딸내미는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는 가족들을 만나서 그런지 (원래 우리한테만 한국어를 쓰더니, 이젠 우리한테도 영어를 섞어서 쓸 때가 많다.) 1시간 넘게 내외를 하더니, 나중에는 그 집 딸과 친해져서 둘이 돌멩이도 줍고 지나가는 말도 구경하고 잘 놀았다. 덕분에 어른들은 매우 평화롭게 햇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 아이들은 다들 칙칙한 옷을 입었는데, 그 집 딸과 우리 딸내미만 (한국인 여자애들 답게) 분홍색 패딩을 입어서 눈에도 잘 띄고 귀여워서 좋았다 ㅋㅋ
아무리 그래도 힘이 들긴 들었나 보다. 남편이 저녁쯤 집에 왔는데 '돌아오자마자 내 목소리와 자기를 대하는 감정상태를 보니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라고 했다. ㅋㅋ 물론 이렇게 스위트한 말만 하는 건 아니다. 자기가 집을 비우고 오면 집이 엉망진창은 아닌데 미묘하게 어질러져 있어서 기분 나쁘다고 했다. 그게 일박 이일 다녀오고 굳이 할 말인가 ㅋㅋ 그래도 어쨌거나 남편이 오니 좋다. 남편이 점심으로 고기 뷔페를 먹었다고 하기에 새우에 채소를 듬뿍 넣고 동남아식으로 볶아 주었다.
어른 한 명이 아이 한 명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들다. 다시 어른 두 명 x 아이 한 명 체제가 돌아와서 좋긴 한데...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