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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22. 2024

베이비 샤워_240420

미국생활 247일 차



베이비 샤워를 했다. 해버렸다. ㅎㅎ 첫째 때도 베이비 샤워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았었다. 지금까지 참여해 본 적도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나나 내 친구들은 이런 일을 벌이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약간 아쉬움이 남았었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질렀다. ㅎㅎ


그래도 거창하게 일을 벌이긴 민망도 하고 부를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가까운 몇 명 만 센트럴 파크에서 피크닉 하는 것으로 기획했다. 그래도 참석하는 아이들이 도와줄 걸 물어봐줘서, 한 명에게 간단한 풍선 데코 한 두 개도 부탁해 뒀다.


그런데, 날씨가 추웠다. 4월 말인데도 낮 기온이 10-12도 정도밖에 안돼서, 어제 필드 트립을 가서도 내내 추워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에는 비까지 온단다. 집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는데, 데코를 맡아준 친구가 먼저 자기 집에서 하자고 제안해 줬다. ㅠㅠ


덕분에 나는 편했다. 집을 따로 정리할 필요도 없었고, 딸내미를 어떻게 잘 관리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침에 베이글과 크림치즈/ 잼, 주스와 티, 일회용품 몇 개만 사서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그나마 신경 쓴 건 베이글 구매처… 나름 맨하탄 최고 베이글 맛집에서 20분 넘게 줄 서서 샀다 … ㅎㅎ


친구 집은… 화려했다. 거실 입구부터 귀여운 장식들이 달려있고, 곳곳에 풍선이며 꽃이며 데코 박스가 가득했다. 원래대로 공원에서 했으면 어떻게 했으려고 이렇게 많이 준비했나 싶을 정도였다.


창가에도 꽃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간단한 다과나 과일, 음료를 준비해 왔다. 나는 가져간 것도 없는데 먹을 게 한 상 차려졌다. 먹으며 수다나 떨 생각이었는데, 누군가 ‘아이가 태어나는 날짜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해서 각자의 예상을 카드에 쓰고 그 카드를 밀랍으로 봉인하는 깜찍한 행사도 하고, 또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전문가용 사진기로 사진도 실컷 찍었다.


아니 밀납이라니 ㅎㅎ


선물도 잔뜩 받았다. 어떤 친구는 왜 출산 선물은 아기 선물만 있는지 모르겠다며 내 선물만 이것저것 사 왔고, 어떤 친구는 딸내미가 섭섭할까 봐 딸내미 선물까지 준비해 왔다.  


다들 친구의 베이비 샤워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처음이라 더 즐거웠나 싶다가도, 베이비 샤워가 처음인 이 어린아이들에게 내가 이런 지출을 유발하다니 ㅠㅠ 싶었다. 그래도 살다 보면 갚을 일이 있겠지 ㅠㅠ


심지어 몇 개 빠진 사진 ㅎㅎ


생일도 딱히 먼저 챙기진 않는 나라서, 가족 밖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자리는 진짜 오랜만이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또 즐겁고 감사한 기운을 많이 얻었다.


선물이 워낙 많아 어떻게 집에 들고 가나 싶었는데, 친구들이 집까지 들어주기까지 했다. 나는 임산부라고 넘어진다고 하나도 못 들게 하고 ㅎㅎ 현관까지 짐을 들어다 줬는데 고마운데 표현할 길이 없고 집에 있는 것도 없어서, 찬장에 사놓은 짜장라면이라도 하나씩 집어서 배달비로 줬다. ㅎㅎ (호스트를 해 준 친구는 조만간 남자친구가 뉴욕에 오는데, 우리 집에서 커플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침 돌아오는 길에는 햇빛이 쨍하게 나서, 양손에 내 선물을 들어준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집에 오던 길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 샤워는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도 들여온 지 얼마 안 되는 문화라서 여기나 우리나라랑 비슷한 것 같다. 친한 친구가 기획이나 준비를 맡아주고, 출산 선물을 받고. 다른 경험들처럼 뉴욕에 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아주 즐겁고 따뜻했다. 백만 번 말한 것 같지만 이벤트를 많이 벌이고 또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돼야지. (그러려면 마음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겠지만) 나는 그런게 즐거운 사람인 것 같다. 원래 생일도 잘 안 챙기는 사람이었는데, 여기 와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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