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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졸업식 일방 취소 + 학교 밖에서 졸업사진_240506

미국생활 263일 차

by 솜대리



동기 방에 누가 월스트릿저널 기사를 올렸다. 컬럼비아 대학 졸업식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응? 아무 공지도 받은 게 없는데? 설마… 싶었는데 다른 언론사에도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한테 돈 주는 회사가 직원 대상 공지를 뉴스로 먼저 하는 것도 질겁했는데, 내가 돈을 내는 학교도 이러네…


다들 식겁…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를 읽어보니 학교에서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해 본 결과 전체 졸업식은 취소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했단다. 학생회는 학교랑 얘기한 바가 없다는 데 누구랑 얘기를 했다는 건지… 동기 창은 난리가 났다. 이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해외에서 오는 가족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 열흘도 안 남은 시점에서 마음대로 바뀌는 것도 황당하고, 그럼 대체 왜 NYPD를 불러서 시위대를 체포해 간 건지 (맨날 졸업식 핑계를 대놓고)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도 화가 난다며 얘기하고 있었다.


총장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올린 인스타 영상에 댓글들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ㅎㅎ


단과대 졸업식은 그대로 진행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엉망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5시 57분에 공지 메일이 와서 갑자기 시간을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 반으로 바꿨다. 당연히 메일 보내고 퇴근을 했으니 그 이후 빗발치는 메일에는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고. 많은 학생들이 졸업식 후 저녁 식사를 예약해 놨는데 다들 황당해했다.


‘우리 졸업식 그대로 하는데 11시 대신 5시 반에 해’ 단과대 졸업식을 일주일도 안남겨놓고 이렇게만 딱 보낼 일인가 ㅋㅋㅋ



게다가 오늘은 장소까지 바꾸었다. 학교 캠퍼스 잔디밭에서 하기로 했던 걸 메인 캠퍼스에서 좀 떨어진 건물의 세미나 룸으로. 동기가 105명 정도 되고, 최대 6명까지 초대를 할 수 있는데 그 세미나 룸에는 해봤자 200명 조금 넘게 들어간다. 어떻게 하려는 건가 모르겠다.


총장이 졸업식 때 학생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을 거다. 학교 측에서도 졸업식 때 시위를 감당하기 버거웠을 거고. 하지만 이렇게 총장과 학교는 점차 더 많은 학생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어떤 졸업생이 지금 상황에 화가 안 날까;; 아이비리그의 총장쯤 되면 그만둬도 밥을 굶지는 않을 텐데 대체 왜 자리를 이렇게 까지 보전하려고 하는지, 그래서 갈수록 못난 모습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뭐 그만큼 욕심이 나는 자리고 그 자리에 서려고 엄청 노력했겠지만 지금 먹고 있는 욕을 보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정도인데.




이 와중에 졸업 사진을 찍었다. 동기들과 함께 이미 사진사를 계약해 놓은 상태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학교에 못 들어가니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남편과 미리 셀프 졸업 사진을 찍어놓길 다행이었다. 같이 찍는 동기들 모두 뉴욕 출신이 아니라 센트럴파크도 나름 의미 있었고.


사진사는 1시간에 300불이었고, 같이 사진을 찍는 4명이 나눠 내서 75불 - 약 10만 원 정도를 냈다. 이동하는 시간도 있었으니 시간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단체 사진도 찍고 개인 사진도 찍었다. 졸업 사진 찍는 거야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전에 사진사와 원하는 내용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만나서는 사진사 가이드에 따라 사진을 찍으면서 중간중간 수다를 떨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해서 중간중간 가족사진도 찍었다. 안 그래도 개인 사진도 찍는다길래 같이 가면 어떨까 싶었는데, 졸업 사진을 찍으러 간다니 딸내미가 ‘Can I join?’ (나도 같이 해도 돼?)라고 했다. 친구들도 양해해 주었고. 개인 사진 찍을 때 두어 번 딸내미랑 같이 찍고, 한 번은 남편까지 셋이 같이 찍었다. 나로서는 졸업사진에 가족사진까지 몇 컷 찍었다. 가족끼리 뉴욕에서 사진사 통해 사진 찍고 싶었는데 이렇게 해냈다. ㅎㅎ 마라톤 뒤 끝이 남은 남편만 따라다니느라 고생했다.


정신없이 쫓아다니느라 같이 찍은 폰카는 하나 뿐 ㅎㅎ


친구들은 사진사와 약속한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근처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해서 셀프 사진을 찍는데 나는 남편이 뻗기 직전이라 먼저 돌아왔다. 그래도 충분히 즐거웠고 동기들도 즐거워 보여 다행이었다. 졸업식 때 여러 이슈가 있어서 (나도 나지만) 졸업하는 어린 동기들이 마음껏 못 즐길까 봐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다들 나름의 방법들로 이 시기를 그래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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