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64일 차
학기도 마쳤고 아이도 학교에 가서 여유로운 하루였다. 유일한 일정이 동기 커플이 집에 놀러 오는 거라, 후다닥 닭볶음탕을 한 냄비 해놓고 아침에는 집에서 남편과 빈둥거렸다. 이사 갈 집도 알아보고 둘째 이름도 고민하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게 정말 좋았다.
이런 자유로운 상태가 또 언제 있었나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 베이징 인턴 갔던 때가 떠오른다. 친구들이 교환학생 갈 때 나는 그 대신 이걸 했는데 그때가 진짜 좋았다. 한국에서는 스펙 쌓기나 취업도 고민해야 하고 주변의 친구들이 뭐 하는지도 둘러보게 되는데 그럴 일도 없고, 그래도 인턴을 하고 있으니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머리는 가벼워졌고. 그 해방된 느낌과 외국 생활이 더해져서 가장 좋았던 시기 중 하나로 기억된다. 남들은 교환학생 때를 그렇게 기억하는 것 같고.
오늘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겨울 방학도 좋긴 했지만 둘째 임신을 막 깨달았던 때라 그래도 후폭풍이 좀 남았고, 회사 휴가 때는 사실 마음이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딸내미 육아휴직 때는 패닉의 연속이었고 ㅎㅎ 여름 학기가 시작하면 이 정도 여유는 못 느낄 텐데, 과연 둘째 육아휴직 때 조금이라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안 되겠지 ㅎㅎ
놀러 온 동기 커플과 수다도 떨고, 뉴욕 와서 매일 하겠다고 벼르던 파이낸셜 타임스 1면 보기도 하고, 교수님한테 학기 초에 받아둔 책도 좀 읽고, 딸내미 가라테 하는 것도 조금 보고 둘이서 놀이터에서도 놀았다. 딸내미는 집에 가기를 아쉬워하면서 ‘엄마 그럼 내일도 나랑 같이 놀이터 올 거야?’ 해서 나를 안타깝게 하더니, 집에 가면서는 ‘엄마랑 노는 것도 재미는 있는데 조금 심심해.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 해서 다시 마음을 놓이게 했다. 효녀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