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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소호 나들이+졸업식 파티_240508

미국생활 265일 차

by 솜대리




그러고 보니 센트럴 파크 아래로 안 내려간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어쩐지 좀 가고 싶더라니. 이대로 방학을 보낼 순 없다 싶어서 소호로 향했다. 간간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연예인들의 맨해튼 브이로그가 뜨는데, 아무래도 비싸고 잘 정돈된 소호가 많이 나왔다. 역으로 나에겐 너무 비싼 동네고, 나는 쇼핑도 안 좋아해서 한 번도 그 동네만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팝업 베이글. 목표는 힙한 소호 방문이었는데 어째 시작부터 먹방이긴 하지만, 내내 가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곳이다. 미국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에서 최고의 베이글 맛집을 찾아보면 1순위로는 우리 동네 앱솔루트 베이글이 언급되지만 거기 못지않게 얘기되는 곳이 팝업 베이글이었다.



가게는 뉴욕 치고는 드물게 활기찬 느낌이 가득했다. 카운터의 직원도 베이킹하는 직원도 밝게 손님들을 맞았다. 다행히 대기는 없었지만, 조금만 있으면 갓 구운 베이글이 나온다며 몇 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뜨끈뜨끈한 베이글을 종류 별로 샀다. 뜨끈함이 가시는 걸 허용할 수가 없어 가게 문을 나서자마자 길가 벤치에서 베이글을 뜯었다.


아점 직후라 배가 불렀지만, 갓 구운 빵을 마다할 순 없었다 ㅎㅎ


흠… 앱솔루트 베이글이 나았다. 개인적으로 베이글은 전통적인 형태 -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 를 추구하는데, 이건 속이 식빵처럼 부드러웠다. 뭐 좋은 경험이었다.


노숙자들이 주로 많이 앉아 있는 횡단보도 중간 벤치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도 많아 좀처럼 앉지 않는 곳이지만 ㅎㅎ



이후에는 제대로 옷 쇼핑 모드에 돌입했다. 마침 맨해튼에서 처음으로 아동복과 임부복 전문 매장을 만나서 들어가 보았다. 아동복은 웬일로 우리나라 스타일로 예뻐서 보니 런던에 본점이 있는 매장이라고 했다. 0세 아기용으로 보이는 분홍 원피스를 집어 들고 값을 가늠해 봤다. 소호 매장이니 우리나라 백화점 정가 정도 예상해 보면… 25만 원? 하고 태그를 봤더니 50만 원이었다. ㅋㅋ 역시 우리나라보다 여기가 비싸다. 임부복은 원피스 하나가 기본 14만 원 정도로 비싸진 않았지만, 그만큼 안 예뻤다.


50만원 ㅎㅎ


사실 진짜 소호에서 가려고 찍어둔 곳은 James Perses와 Aime Leon Dore였다. 앞의 가게는 홍진경 유튜브에서 봤는데 여기 기본 티셔츠가 10만 원 조금 넘지만 품질과 핏이 좋아서 여기 것만 입는다고 했다. 가보니 역시 고급 가게라 그런지 도어맨도 있었다. ㅎㅎ Theory처럼 기본 스타일이 많은 곳이었다. 만져보니 면이 좋긴 했다. 기본 티셔츠가 95 불, 14만 원 정도 했다. 남편 걸 하나 살까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기본이라 사진 찍어서 남편에게 협박만 한 마디 했다. “말 안 들으면 여기서 오빠 옷 쇼핑한다”라고 ㅋㅋ


14만원 짜리 James perses 티셔츠


두 번째 가게는 손태영 유튜브에서 본 곳. 젊은 패피 남성들이 많이 쇼핑한다고 했다. 손태영 유튜브 영향인가 내가 갔을 때는 20대 한국인들이 많았다 ㅎㅎ 깔끔하면서도 조금씩 브랜드만의 킥 (힙함?) 이 들어간 디자인이었다. 잘 고르면 남편도 입힐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도 깔끔. 오른쪽 벽에 걸린건 찌그러진 농구공들이다. 무슨 뜻일까?


여기도 티셔츠가 95불 정도 했다. 앞의 가게보다 디자인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고민하다가 캡 모자만 65불, 9만 1천 원 주고 하나 샀다. 맨날 아이랑 밖에서 노는데 선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안 써서. 남편에게 비싼 돈 주고 모자를 샀으니 앞으로 열심히 쓰고 다니라고 했다. 남편도 필요하긴 했는지 다행히 별 말은 안 했다. 가격을 듣더니 열심히 쓰겠다고만 했고 ㅎㅎ 예쁜 모자도 사주고, 햇빛도 좀 가리게 시키고 (남편과 딸내미의 피부색은 이미 한국인 피부색의 범위를 넘어섰다.) 일석 이조였다 ㅎㅎ


구매 인증샷. 배경은 가게 안에 데코용으로 있던 (?!) 페라리


소호는 뉴욕 다른 동네들과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어서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여느 때의 차림으로 - 임산부용 원피스 하나를 입고, 책가방을 매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하나로 묶고 - 나섰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그렇게 다녀도 아무 위화감이 없었다. 여기서야 다들 자유로운 복장이니까. 하지만 소호에서는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아 내가 좀 덜 차려입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옷가게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한국도 워낙 옷값이 비싸니 티셔츠 하나가 십만 원 넘는 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맨해튼은 뭐든 더 비싼데 옷값이 비슷하니 오히려 사볼까 싶었다.



집에 와서 잠시 쉬었다가 졸업식 파티에 나섰다. 원래는 딸내미, 남편과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딸내미가 오후에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나만 나섰다. 여기 와서 한 번도 열이 난 적 없었고 아침에는 멀쩡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딸내미가 아픈 데 가도 되나 싶고, 원래도 딸내미가 파티 좋아할 것 같아서 가려고 했었는데 고민하다가 혼자 나섰다.


장소는 학교에서 한참 멀었다. 할렘보다 훨씬 위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 딸내미랑 같이 못 왔는데, 와보니 딸내미 생각이 더 났다. 허드슨 강가에 바로 접해 있어서, 멀리 조지 워싱턴 다리도 보이고 옆에서는 워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원한 느낌을 더해 주는 데다가 조금 지나니 옆으로 해도 졌다. 간단한 핑거푸드가 서빙되었고, 술은 거의 무한이었고 (ㅠㅠ), 전직 인디 가수였던 동기 한 명이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어찌나 잘하던지 반할 지경이었다.


이런 배경!


원래 졸업식 파티 (The Formal)은 이름 그대로 좀 더 격식을 차려입고 춤도 추고 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옷도 비교적 캐주얼하게 입고 온 사람들도 많았고 춤추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느슨한 분위기에서 서로 수다 떨고 노는 것 자체가 편안하고 괜찮았다.


이런 분위기


이런 대규모 파티를 그렇게 즐기진 않지만 그래도 다들 이제 익숙한 동기들이라, 나도 이 동기 저 동기와 수다를 떨며 2시간이나 보냈다. 학기 말에는 과제도 많고 학교 상황도 심각해서 다들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학기는 대부분 마쳐서 전보다는 다들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레드 드레스의 동기가 너무 노래를 잘해서 반할 뻔 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방향이 같은 몇몇 동기들과 함께 나섰는데, 우리가 나서고 단체 사진도 찍고 루프탑이 있는 한 동기 집에서 2차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도 졸업은 하나보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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