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66일 차
외식을 한 번 하고 싶었는데 남편 컨디션 회복 주간이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어제 한 동기가 내일 다른 동기와 브런치 예정인데 함께 하려나 묻길래 넙쭉 받았다. 맨해튼에 몇 군데 지점이 있는 ‘The Grey Dog’라는 브런치 가게의 웨스트 빌리지 지점이었다. 구글 평은 굉장히 많은 곳이었는데 그래도 목요일 아침 10시 반이라 그런지 가게는 여유로웠다.
디카페인 커피 한잔과 치킨 +. 콘 팬케이크 + 리코타 치즈/ 매콤한 메이플 시럽이 나오는 음식을 시켰다. 이젠 미국 사람이 다 되었는지 아침부터도 치킨이 잘 들어갔다. 가게가 여유 있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치킨이 닭가슴살인데도 촉촉했고 음식의 전체적인 조합도 괜찮았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하면 1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서 얘기하는데, 여기는 (점심/ 저녁 때도 그런데) 브런치도 그렇지 않았다. 음료와 음식 주문을 따로 받고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는데도 45분 정도 만에 나왔다. 음식만 먹고 나면 딱 일어선다. 카페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1시간 반인데 여기서는 길어도 1시간 정도인 것 같다. 걷기 좋은 뉴욕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이후에 얘기할 것 같으면 차라리 걷는 것 같다.
이번에도 식당에 나서서 웨스트 빌리지를 한 바퀴 돌았다. 소호 바로 옆인데도 웨스트 빌리지는 좀 더 부담 없고 인디의 느낌이 있다. 가격이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비해 싼 건 아니지만 ㅎㅎ 브런치 가게, 카페, 옷가게들이 브라운 스톤 건물들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참 산책을 하다가 동기가 맛있는 쿠키랑 커피가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고 해서 미드타운으로 올라가서, 쿠키와 커피를 샀다. 쿠키는 어디서 수상한 쿠키라는데 역시 한국 맛집과 비교해도 맛있다고 할만한 꾸덕하고 찐한 맛이었다. 커피는… 여기서 어지간한 맛집 아니면 서울의 보통 커피 맛집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다.
쿠키와 커피를 사서 브라이언트 파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테이크아웃 음식으로 공원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도 많았고, 주식 트레이더가 내내 주식 얘기를 하며 주변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나 진짜 뉴욕에서 살고 있구나 실감이 났다.
같이 있는 동기들 중 한 명은 마침 졸업식만 끝나면 곧 캘리포니아 집으로 돌아가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역시나 싱숭생숭하단다. 뉴욕 살 때는 좋은 지 물랐는데 그래도 떠나려니 아쉽다고. 여기의 문화 산업들도, 다이내믹함도, 공격적이지만 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하는 뉴요커들도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말은 친절하게 하지만 말만 그렇지 도움이 안 될 때가 오히려 많다고 했다. ㅎㅎ)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자기는 외곽에서만 살아서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도 좀처럼 바뀌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동네에 있는 가게들만 해도 맨날 바뀌고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들과 수도 없이 마주치는 게 낯설었다고.
도시에서 살다 온 나는 오히려 동기가 비교하고 있는 외곽에서의 삶이 생경하게 느껴지만, 여기를 떠나는 아쉬움은 알 것 같다. 나는 떠나면 여기의 다양성과 그로 인한 자유는 그리울 것 같다. 어떻게 하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본의 유명 서점인 키노쿠니야가 타임스퀘어 근처에도 있어서 그곳 구경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건물에 들어와 있어서 그런지 일본에 있는 키노쿠니야 보다 훨씬 물건 종류도 적었고 전반적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덜했다. 키노쿠니야도 원래 대형 서점이라 다른 일본 로컬 서점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긴 우리나라에 관리가 좀 안된 중대형 서점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동기들에게는 낯선지 귀엽다며, 둘 다 신나게 구경을 했다. 어제 소호에서 문구점에 들렀을 때도 대부분의 물건이 일제였다. 문구는 역시 어딜 가도 일제가 꽉 잡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쓰던 것 바리바리 싸 오길 잘했다…
어제 산책한 동네에서 네에서 밥을 먹고 산책하게 돼서 어떨까 싶었는데, 바로 옆이지만 동네 느낌도 많이 달랐고 동기들과 같이 하니 다른 부분도 많았다. 새로운 느낌으로 뉴욕 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가을 학기에는 적응하느라 바빴고, 다들 봄학기가 되어 슬슬 놀 때 나는 또 임신 초기라 많이 못 놀았다. 여름에 동기들이랑도 자주 다운타운 나들이 해야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