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61-2일 차
주말에 일박이일 롱아일랜드 호텔 콕을 하다 왔다. 이박을 예약하고 일찍 체크아웃한 거라 24시간을 있었는데, 정말 24시간 동안 호텔 바깥을 한 발짝도 안 나갔다. 호캉스 하러 간 호텔도 아니었는데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원래는 남편 마라톤 응원을 간 참이었다. 시작할 때도 같이 갈까 하다가 남편이 외려 번거롭다고 해서 결승점만 갈 생각이었는데, 남편이 마라톤에서 중도 하차를 하면서 내내 호텔에만 있었다. 덕분에 수영장에서 더 오래 놀 수 있었던 딸내미는 좋았던 것 같긴 하다. 호텔이 좋았단다. ㅎㅎ
남편에겐 첫 마라톤이었지만 실패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충분히 연습을 했고, 상위 10% 내로 들어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 한 번 체하고 계속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서, 마라톤 전 날 밤에 설사를 5번이나 한 남편은 결국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남편에게 좋은 깨달음이 되면 좋겠다. 남편은 남들이 보기엔 분명 무리인데 ‘괜찮다’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배려하기도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볼 땐 조마조마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냥 집에 데리고 오라는데 아이를 놀리고 온다던지, 속 편한 음식을 두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지, ‘괜찮아’를 며칠 째 연발했다.
당일도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아’라며 나가고. 말해봤자 남편이 잔소리한다고 화낼게 뻔해서 한두 번 권하다 말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남편 몸도 2, 30대 때나 혹사당했지, 이제는 못 버티는 거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남편이 끝까지 포기 안 하다가 쓰러지는 시나리오였는데, 거기까지 안 가서 천만다행이다.
미운 마음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하도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고 걱정해도 신경질만 내서 남편이 미운가 싶었는데 또 그런 건 아니었다. 남편을 마라톤에 내보내놓고, 걱정하고 응원하는 나를 보며 내심 놀랐다. 위치 추적 앱으로 계속 보며 달리기 페이스까지 보면서 걱정하고, 호텔 바로 앞으로 마라토너들이 지나간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진짜 나가서 응원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안달복달한다던지. (애 챙기고 나가니 결국 너무 늦어버려 호텔 주차장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긴 했다.) 참내. 부부는 부분가 보다.
원래 호텔은 남편과 남편 친구가 마라톤 전날 묵으려고 예약한 호텔이었는데, 남편 친구네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호텔이 비었고 마라톤 당일만 가려던 나와 딸내미가 가게 됐다. (쌍둥이가 일찍이지만 무사히 태어난 건 다행이라도) 마라톤에 참석 못한 남편 친구를 안타까워했는데, 우리도 딱히 다를 건 없었다. ㅎㅎ
+) 아 그리고 롱아일랜드의 휑함도 잘 구경했다. 롱아일랜드는 원래 바닷가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묶은 쪽은 바닷가 쪽이 아니었고 섬 중간이었다. 반경 몇 킬로가 공원과, 무슨 경기장과 행사장과 주차장으로 가득했다. 식당도 마땅치 않아서 내내 배달을 시켜 먹어야 했다. 나름 도시고 맨해튼에서 차로 한 시간인데 이렇게 휑하다니. 다시금 미국의 넘치는 땅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