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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기후 대학원의 효용_240523

미국생활 280일 차

by 솜대리



석사 졸업을 앞두고 내내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길어진 가방끈만큼 내가 뭘 더 아는가. 물론 대학 전공에 대해서도 딱히 자신감은 없어서 이럴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관련 일을 할 텐데 언제까지 내가 하는 일에 전문성이 없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여름 학기에 할 일로 파이낸셜 타임스 (FT) 기후 섹션 읽기를 추가하고,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과목들을 추가 수강하는 것도 그런 불안감에서다. 하지만 오늘 FT 를 읽으면서 약간 안도를 했다.


생각보다, 기사에서 다루는 이슈들이나 그 맥락에 대해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오늘 FT 기후 세션에는 ’Green grabbing’ (기업 등에서 숲 보전을 통해 탄소 저감을 하겠다고 숲을 사들이는데, 이게 토지 소유권 없이 그 숲에 수백 년 동안 살던 원주민들에게는 갑자기 집을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최근 Nature 논문을 예시로 이 이슈를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 이슈는 오래된 얘기다. 그리고 기획 기사는 울트라 프로세스드 푸드(UPF)가 어떻게 전 세계 비만율에 문제를 끼치는가였는데, 나는 이를 둘러싼 학계나 국제기구 내 논란에 대해서도 배웠다.


학위 전에도 FT의 기사들을 드문드문 보긴 했는데, 그때는 모두 새로운 얘기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기사들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에 최신 소식을 조금씩 더해주는 느낌이다. 딱히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기후 전반에 대한 기본 지식이 생긴 거긴 하지만, 바로 그게 내가 이 학위를 하면서 바랐던 바다.


물론 뉴욕에서 가족들이랑 살아보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다.


혼자서도 할 수 있었겠지만, 그건 마치 헬스장 등록해 놓고 운동을 혼자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헬스장을 등록하면 처음에는 좀 다니겠지만, 운동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의지도 갈수록 약해져서 점차 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PT를 끊어놓으면 수업이 잡혀 있기도 하고 돈도 걸어놨기 때문에 열심히 다닐 수밖에 없다. 이번 학위도 내게 그랬던 것 같다. ㅎㅎ 이미 각 분야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이 있고 배경지식이 탄탄한 전문가들이 PT 선생님처럼 나를 가이드해줬다.


목표한 내적 목표는 이뤘다. 하지만 사실 이 학위가 경제적인 효용이 있는가는 약간 의문이다. 회사 내에서 필요에 따라 흘러 다니지 않고 내가 관심 있는 일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회사 밖에서도 단순한 제너럴 리스트가 아니라 기후 커리어를 밟는 사람으로서 나를 포지셔닝할 수 있긴 할 거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는 건 또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일자리와 더 나은 연봉으로 이어질 것인가.


이게 돈을 버는 일이고 일자리가 많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후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큰 조직에서도 담당하는 이가 많지 않고,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가장 먼저 감축하는 게 이 분야다. 그러다 보니 사람도 많이 뽑지 않고 신입은 거의 안 받는다. 그래서 직장 경력 없이 온 동기들은 특히 일자리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래서 그런지, 동기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온 것 같다.) 나는 경력이 있지만 기후 쪽은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도움이 되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경력과 하고 싶은 분야의 경력이 너무 차이가 나서 오히려 그 부조화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뭐 나는 당장은 출산 때문에 이런 고민과 조금 떨어져 있고, 다니던 회사에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그러고 보면 다행이다. 조바심을 갖지 않고, 나의 내적 목표만 생각하며 천천히 나아가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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