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365-6일 차
둘째가 태어났다. 미국에 온 지 딱 1년째, 제왕절개 예정일 이틀 전이었다. 제왕절개 예정일이 39주 0일, 딱 첫째가 나왔던 날이어서 (뉴욕주는 그 보다 일찍 제왕절개를 잡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몸을 사린다고 사렸는데 역시나 둘째는 첫째보다 일찍 나올 수밖에 없다.
진행도 아주 빨랐다. 새벽 1시 반에 화장실이 가고 싶더니, 2시 반에는 이슬이 비치고, 3시 반쯤 되니 진통이 10분 간격이 되었다. 얼른 부모님을 오시도록 해서 딸내미를 맡기고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고, 6시 반이 되어서 수술이 시작됐다. 모든 게 느린 미국에서 새벽에 병원을 간 것치고는 빨리 진행이 됐지만, 진통 중인 내 입장에선 시간이 그렇게 안 갈 수가 없었다. 특히 입원하기 위해 사인할 서류가 어찌나 많던지, 수속하다가 애 낳는 줄 알았다. 한참을 서류를 쓰고, 내진과 태동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야 의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자연분만 할 테니 무통을 놔달라고 할까 0.1초 고민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두 번째지만, 미국에서 하는 제왕절개는 사뭇 달랐다.
1. 수술은 남편과 함께
남편이 아예 수술복을 입고 들어와서 내 옆에 수술하는 내내 함께 있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치할 때 아이를 보기 위해서만 잠깐 떨어진다.) 수술을 받고 있지만 어차피 마취를 해서 감각이 없고, 아이가 태어날 때 빼고는 가슴 아래를 천으로 가려놔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술 내내 남편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크게 두렵지도 않고 좋았다. 남편은 종교도 없으면서 내내 기도하는 손을 하고 있었지만 ㅎㅎ
2. 하반신 마취만
한국에서는 처음에 하반신 마취를 해서 아이를 꺼낼 때까지만 깨어있고, 그 이후 후처치를 할 때에는 수면마취를 한다. 그런데 여기는 내내 하반신 마취를 해서 처치가 끝날 때까지 깨어있는다. 내 담당의사가 내 수술로 수련의를 교육시키는 건지 수술 내내 '그쪽이 아니고 이 쪽으로 당겨야지', '그게 아니잖아'를 연발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3. 아이는 늘 엄마 아빠와
아이를 꺼내서 대강 닦고 숨만 틔운 후, 내 어깨에 아기를 턱 걸쳐줬다. 내 얼굴과 아기 얼굴이 처치를 하는 남은 한 시간 동안 계속 붙어 있었다. 첫째 때는 자연분만 중 긴급한 상황으로 제왕절개에 들어왔는데 고생한 아기 얼굴만 보고 어디로 보내고 나는 정신을 잃는 게 안타까웠는데, 이번에는 내내 아기랑 같이 있어서 좋았다. 그나저나 첫째는 배를 가르자마자 우렁차게 울어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웃기더니, 둘째는 나를 보자마자부터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내내 입을 뻐끔거리며 젖을 찾아서 당황하게 하면서도 웃겼다.
수술 이후에도 무조건 모자동실이다. 둘째지만 신생아를 보는 건 처음이라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태변이 나오는 첫 3일은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어서 몰랐는데, 이 태변이 처리가 골치 아팠다. 끈적거려서 닦기도 어려운데, 아기는 괄약근이 발달하지 않아서 밤새 흘러나왔다. 수술 직전에도 진통 때문에 밤을 새웠는데 아기 낳고 연달아 밤을 새우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도 아이한테는 확실히 좋은 것 같기는 하다...
4. 아이를 씻지 않는다.
수술 때 아이를 대강 닦고 주길래 나는 나중에 씻겨주나 했더니, 병원에 있는 내내 그대로다. 소아과 의사에게 물어보니 남은 탯줄이 떨어지고 씻기길 권장한다고 하고, 한국 교포인 산부인과 의사에 물어보니 미국은 태지가 피부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최대한 늦게 씻긴다고 했다.
5. 스파르타식 회복
한국에서 제왕절개하고는 4박 5일을 입원했는데, 여기는 2박 3일 만에 퇴원한다. 수술 후 8시간 동안은 물 종류만 먹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다. (첫 식사로는 치킨 구이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24시간 만에 뽑는 소변줄을 여기선 12시간 만에 뽑고, 18시간 만에 화장실에 가도록 시킨다. 한국처럼 보호자와 동반이 아니고, 간호사가 도와주는 (=지켜보는) 앞에서 일정량의 소변을 봐야 한다. 나는 양이 부족해서 2번을 더 해야 했다... 한국 친구들에게 수술 당일에 혼자 걸었다고 했더니 식겁했다.
약도 한국보다 세게 쓰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첫째를 낳고는 수술 부위 켈로이드가 심했는데, 주사는 모유 수유 중에 쓸 수 없다고 해서 수유하는 일 년 내내 간지러움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여기는 내가 이런 이력이 있다고 했더니 아예 예방차원에서 수술장에서 주사를 놔주었다. 수유에 영향 없다고. 임신 기간 내내 느끼는 데 미국과 한국은 리스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른 것 같다.
6. 면회와 운신의 자유
보호자 외출, 면회 등이 다 자유롭다. 한국은 조리원은 물론이고 병원도 은근 제약이 있었는데. 덕분에 딸내미랑 우리 부모님도 출산 다음 날인 오늘 둘째를 만날 수 있었다. 언제든 먹고 싶은 걸 남편이 사다주기도 편하고.
뭔가 같은 듯 계속 다르니 평행우주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제왕절개는 했는데 장소도 메커니즘도 다르다. 남편은 같은데 우리 사이에 한 명 있는 아이가 다르다. 뭔가 묘했다. 딸내미가 면회를 오고, 첫째와 둘째를 한자리에서 보고서야 마음속 혼란이 좀 가시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었다. ㅎㅎ
임신 기간 내내 자잘한 이슈도 많았고,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아이도 나도 건강해서 마음이 크게 놓였다. 수술 후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미 첫째가 만 다섯 살이 다 돼 가니 신생아를 다시 보는 재미도 있다. 아직은 정신없음이 더 크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 냄새나 촉감이 너무 좋다. 이런 핏덩이를 언제 첫째처럼 키우나 싶다가도, 너무 예쁘고 귀엽고 귀하다. 둘째야,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