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385일 차
어제는 산후 검진을 갔다. 사전에 보험 적용이 됨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공식적으로 내 보험 자체는 만료됐고 일부 보장만 연장되었기 때문에) 역시나 내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진료 접수할 때부터 몇 번을 설명해야 했고, 진료 시 의사도 ‘애 낳은 지 얼마나 됐냐 (기존 보험으로 산후 6주까지 산후 검진커버가 된다.), 왜 저소득층 보험으로 바꿨냐, 이번까지는 기존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만 다음 산후 검진은 볼 수가 없다. 물리치료사를 만나면 좋겠지만 아마 저소득층 보험이라 어려울 거다’ 등등의 얘기를 했다.
출산 직전 학생보험이 종료되면서부터 내내 경험했던 일들이지만, 컨디션도 안 좋고 울적한 상태라 그런지 부쩍 더 우울해졌다. 다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아픈데 제대로 병원에 가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진짜 아프면 한국에 비행기 타고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여기 와서 처음 든 생각이다. 미국에 와서도 학생이라는 신분과 그에 따른 제도들이 나를 나름 보장해 줬었는데, 그게 종료된 후 나는 여기서 제도권 밖의 사람이다. 제도권 밖이 되니 1차 병원 한번 갈 때도 엄청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럴 때는 주류로 살고 싶다. 제도권 안에서 살고 싶고, 보통으로 살고 싶다.
한 번도 한국에선 해본 적 없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고 싶어 했다. 한 번도 주류 혹은 보통의 범주에서 제대로 벗어나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간단히 생각했던 것 같다. 나만의 색깔을 가진다는 것도 사회의 안전망과 주어진 틀 안에서의 얘기인 것 같다. 그러지 못했을 때 삶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처음 미국에 올 때 남편 블로그에 누군가가 ‘미국에서 주류가 될 수 있으면, 남아서 사는 것도 괜찮아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주류가 될 수 있으면’이라는 조건문이 떠오른다. 김보통 작가의 다른 책 내용도 생각난다. 뭐 하나 결정할 때마다 지나치게 고민하던 아버지가 예전에는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던. 작가의 그 기억과 ‘보통’이라는 작가의 필명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그나마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해결된다는 보장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싶다.
주류라는 게 꼭 있어야 할까. ESG를 얘기할 때 ‘다양성’도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이다. 다른 인종, 성적 취향, 각종 상황도 포용하고 나아가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이게 실행이 된 사회는 주류/ 비주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두가 평등해지는, 모두가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일 거다. 그런데 가능할까.
고등학교 때 사회는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다. 루소가 이 사회 계약론을 얘기하고, 이게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는 사회학 전공이 아니라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 이론을 믿는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하는 어느 정도의 틀을 지켜야 한다. 이 틀을 지키는 사람들을 주류로 삼았던 건데, 이 틀이 다소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서 사회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더라도 개인의 인종이나 취향, 상황 등으로 주류/ 비주류를 구분했고, 다양성의 추구라는 건 그 틀을 조금 더 느슨하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어느 정도의 규범은 있어야겠지만, 아직은 넓혀나갈 여지가 아주 많아 보인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 ‘나만의 색깔 가지기’가 화두인 요즘, 다양성과 포용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걸 보장해 주는 곳을 찾아 나갈 거다. 나는 조금 다른 의미의 비주류이긴 하지만, 이렇게 주류의 범주를 늘려나가는 데 대 찬성이다. 미국에 와서 ESG, 사회 분야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