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13일 차
딸내미 친구 파이퍼네가 놀러 왔다. 둘째는 잘 자고, 남편은 그 옆에서 쉬고 있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잘 뛰어놀고. 덕분에 파이퍼 엄마랑 내내 수다를 떨었다.
전에 파이퍼 아빠를 만났을 때 아내가 나 떠나는 걸 너무 아쉬워한다고 얘기하더니, 오늘은 그 엄마가 직접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 이 도시는 친해지면 떠난다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군가 갑자기 사라지는가 하면 갑자기 나타난다. 여기 산 지 일 년 좀 넘은 우리가 그걸 느낄 정도다. 서울이나 뉴욕이나 똑같이 대도시지만 뉴욕이 그런 게 훨씬 심하다.
별생각 없이 있었는데 아쉽다는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나도 아쉬워졌다. 파이퍼네는 처음으로 ‘아이끼리 친해서 엄마끼리 친해진’ 집이다. (그게 미국인이라는 게 신기하다 ㅎㅎ) 여기 오기 전에는 아직 첫째도 또래 무리가 생길 만큼 사회성이 발달할 때는 아니었으니 그럴 일이 없었다. 맨날 애들 놀리고 잡다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 파이퍼네 외할아버지가 중국어를 잘하고, 친가는 유독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또래 친구가 없으니 몇몇 친구 엄마들이 그런 역할을 해줬다. 수다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든든한 울타리도 돼줬다. 파이퍼 엄마는 이삿날 첫째를 데리고 가 봐주더니, 애 낳고는 음식을 가져다줄까 회복을 위해 걸을 때 말동무를 해줄까 물어줬다. 시드니 엄마는 임신 중에 아플 때 매일 아침 내게 먼저 연락해서 의사로서 조언해 주고, 무슨 날마다 초대해 주고, 맛집 가면 나한테 자랑하고 ㅎㅎ 이제 진짜 엄마끼리도 친구가 되나 싶은데 떠나게 되었다.
나는 나이가 몇인데 헤어지는 건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나도 벌써부터 그런데, 여기서 처음 제대로 친구를 사귀어 본 첫째는 어떨까 싶다. 같이 의지하며 전환기를 힘내서 보내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