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14일 차
미국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 장소를 빌린다: 넓은 키즈 카페 같은 공간을 빌려서 한다. 모든 걸 준비해 주지만 기본 수백만 원이 든다.
- 놀이터나 공원에서 한다: 비용은 저렴하지만 직접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꾸미고 등등 공수가 많이 든다.
- 집에서 한다: 꾸미고 음식을 장만하고, 보통은 따로 놀거리도 준비한다. 맨해튼은 다들 좁은 집에서 사니 보통 집에서 하는 생일파티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첫째 생일을 앞두고 세 가지 방법 다 고민해 봤지만 50일도 안된 둘째+아직 성치 않은 엄마 조합으로는 어떻게 해도 무리일 것 같아서 모두 포기했다. 미국을 떠날 날도 멀지 않아 가능하면 제대로 파티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외할머니 덕에 조촐하게나마 생일 다운 생일을 보냈다. 딸내미는 이틀 동안 생일 선물 쇼핑을 하며 외할머니한테서만 4개의 선물을 받았고, 생일 당일에는 외할머니가 미드 타운으로 나가 맛있는 케이크도 사 오셨다. 그것도 첫째가 간절히 원하던 동그란 케이크.
생일을 하면서 첫째한테 우리가 너무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나 싶은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이 ‘꼭 동그란 케이크를 사달라’고 했을 때다. 작년 딸내미 생일 때도 제일 작은 케이크를 샀고, 그 이후 우리 생일에는 조각 케이크만 샀다. 여기 홀케이크는 기본 7만 원 정도는 하는 데다 너무 많아서 늘 작은 걸 사자고 설득했는데 첫째는 그게 아쉬웠나 보다.
데코레이션을 할 때도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전에 어디 가서 무료로 선물을 나눠주니 ‘공짜로 받아왔다’고 자랑하기도 했었고. 헝. 준비하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 돈 많다고, 데코레이션은 너 사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고르라고 해놓고는, 불어둔 지 며칠 된 것 같은 만오천 원짜리 헬륨 풍선을 고르길래 또다시 다른 걸 사도록 유도했다. 바람이 빠졌건 말건 사줄걸. 진짜 생일에는 꼭 사줘야지.
간단히 집을 꾸미고 사진도 찍었다. 둘째는 자다가 강제로 옷 갈아입힘을 당하고 쪽쪽이 꽂혀서 사진을 같이 찍어야 했다. ㅎㅎ 첫째는 그동안 의젓하게 혼자 기다리고 동생도 달래고, 빨리 찍어야 한다는 우리의 요청에도 잘 응해줬다. 첫째랑 사진 한 번 찍기 어려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진짜 다 컸다. 이렇게 예쁘고 바르게 자라준 첫째한테 무한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