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23일 차
육아를 하다 보면 모든 게 미묘하게 비틀려서 힘든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3일 연휴 직후, 남편도 나도 지쳐있었고 풀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남편은 청소부터 하고 싶어 했고 나는 오늘은 하루 좀 쉬고 둘째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둘 다 의견이 다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
남편이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봤고, 그러고 나니 수유 타이밍도 애매해졌는데 나는 잠깐 혼자라도 쉬어야겠다며 나갔다. 그런데 내가 간 사이 아이가 내내 보채는 바람에 남편은 지치고 나는 카페에 앉자마자 돌아와야 했다.
결국 누구도 하고 싶은 걸 못했고, 둘 다 기진맥진했다. 남편은 그냥 아이가 울더라도 할 일을 해야겠다고 나도 신경 쓰지 말라고 놀고 싶을 때 놀라고 했고, 나는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매일 있는 논쟁이고 크게 감정을 내세운 것도 아니지만 지친 상태에서 그런 얘기는 서로를 더 지치게 했고 나는 괜히 우울의 늪에 빠졌다. 아직 산후라 그런지.
(생각해 보면 휴일 후 첫 자유일에는 어떻게든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며 쉬어야겠다. 서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게 아니고.)
그렇게 울적하게 오후를 보내는데 딸내미 친구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다섯째 아들을 출산한 지 막 2주가 된 엄마였다. (모두 철저한 계획 출산이고 목표는 여섯이다.) 핼러윈을 기념해, 신생아인 막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날 핼러윈 파티를 연단다. 소수만 초대하는데 셋째 아들이 제일 먼저 초대하고 싶어 한 친구가 딸내미라고 오려나 물었다.
그 순간 하루 간의 지침과 긴장과 우울이 엄청 우습게 느껴졌다. 우리는 딸 둘을 데리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여기는 다섯 아들에 막내는 우리 둘째보다 더 신생아다. 우리는 힘들다고 올해 딸내미 생일 파티도 가족끼리만 하는데 핼러윈 파티라니.
이 엄마는 내가 누워있던 임신 막달에도 유모차에 넷째를 태우고 유모차에 킥보드 2개를 얹고, 나머지 아들 셋을 데리고 다녔다. 집에서 아이들 생일 파티를 했고 생일 케이크도 직접 굽고 액티비티도 직접 챙겼다. 아 넷째가 신생아일 때 석사도 했다… 지금은 회복에 집중하고 있지만 남편의 출산 휴가가 끝나면, 태어난 지 한 달 된 다섯째를 데리고 나머지 넷을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군데의 학교에 데리고 다닐 거다. 보면 육아에 허술한 것도 아니다. 애들도 똑 부러지게 그리고 애정으로 키운다. (선생님 + 교육학 석사 출신이다.)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가끔 이곳의 엄마들과도 그런 얘기를 한다. 이 엄마는 어나더레벨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이 엄마는 어나더레벨이 아니다. 그냥 육아의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