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22일 차
지난번 파티시티에서 딸내미가 호박 파는 도구에 관심을 보이는 김에 파이퍼네와 잭 오 랜턴(핼러윈 호박) 만들기 플레이 데이트를 잡았다. 파이퍼 엄마가 친절하게 모든 가이드를 주었으나… 뭘 모르는지도 몰라 따라가기 힘들었다.
호박 사기: 우리는 우리 호박만 사가면 됐다. 마트에서 아무 거나 너무 크지 않은 걸 사면된다는데, 너무 큰 게 얼마나 큰 건지 알아야지. 트레이더조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수박만 한 것과 주먹 만한 호박 사이에서 이틀을 고민했다. 그러다 다른 구석에서 멜론 만한 걸 발견해 그걸 사려고 했는데 딸내미의 고집으로 결국 수박만 한 걸 사서 이고 지고 갔다. 투덜거리며 그 집에 딱 도착했는데, 그 집에도 우리 거 만한 게 있었다. 우리가 사 간 호박이 딱 좋은 사이즈였다. 그럼 대체 ‘너무 큰’ 호박은 얼마나 큰 거지.
호박 뚜껑 따고 속 파내기: 호박 뚜껑을 따라길래 열심히 땄더니 알고 보니 좀 넉넉한 크기로 따야 했다. 국자를 넣어 속을 파내야 하는데 국자가 잘 안 들어가서 손으로 파냈다.
패턴 붙이기: 파이퍼네가 패턴 북을 사놔서 거기서 패턴을 골라 붙이면 됐다. 패턴북은 돈 값을 하려고 하는지 클래식 잭 오 랜턴 (그냥 눈 코 입) 보다 더 어려웠다. 해리포터에 빠진 딸내미는 무려 올빼미를 골랐다. 눈, 코, 입에 부리에 날개에 몸통까지 있는… 그 패턴을 호박에 붙이라는데 앞으로 단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 이걸 둥근 호박에 잘 맞게 좀 잘라서 붙여도 되는지, 그럼 얼마나 잘라야 괜찮은 건지… 파이퍼 엄마도 애 둘 때문에 패닉 돼서 제대로 물을 타이밍도 없었다. 그래도 이다음에는 단순 노동이었는데…
선 따기: 패턴 북을 따라 플라스틱 꼬챙이 같은 걸로 호박에 점선을 낸다. 여기까지는 딸내미가 거의 다 했다.
무한 톱질: 실톱 같은 걸 꼽아서 아까 낸 점선을 따라 계속 실톱질. 파이퍼랑 파이퍼 언니는 이미 놀러 가고 없고, 딸내미는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위험한 것 같으니 자리를 떴다. 내가 같이 손을 잡고 해 줘도 소용이 없었다. 이때부터 파이퍼 엄마와 나의 무한 실 톱질 ㅋㅋ
장장 2시간 가까이 파이퍼 엄마랑 나는 잭 오 랜턴 만들기에 매진했다. ㅋㅋ 나는 초보라 오래 걸리고 파이퍼 엄마는 큰 애 것까지 2개 만드느라 오래 걸렸다. 남편이 그동안 애들은 뭐 했냐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ㅋㅋ
파이퍼 엄마가 저녁까지 챙겨줬다. 칠리 수프였는데, 내가 먹어 본 칠리 수프 중 제일 맛있었다. 알고 보니 파이퍼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서 매년 핼러윈 때마다 칠리 수프 경연을 하는데 수년째 도전 중이란다. 어쩐지 ㅎㅎ 칠리 수프 경연을 하는데도 가보기로 했고, 우리 동네 핼러윈 장식 잘해놓은 건물 리스트도 해마다 인터넷에 떠도는 데 공유받기로 했다. 작년에는 트릭 올 트릿만 해도 재밌었는데. 올해 핼러윈도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