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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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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Nov 12. 2024

기후 우울감, 뉴욕의 가뭄과 산불_241109

미국생활 448일 차



처음에는 집 근처에서 잠시 누가 불을 피우거나 한 줄 알았다. 낮에 안방에서 연기냄새가 나길래 살펴보니, 창문이 열린 화장실을 통해 냄새가 들어온 것 같았다. 불이 난 거면 앰뷸런스 소리를 들었을 텐데 그런 소리는 못 들었으니 일시적이겠거니 싶어서 안방 창문도 활짝 열어놓고 거실로 나가서 생활했다. 조금 있다 안방에 들어오니 냄새가 좀 옅어진 것 같아 그렇게 넘겼다.


그러다가 잠시 마트에 가려고 온 가족이 나서는데 목이 매캐했다. 우리가 사는 블록을 벗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검색해 보니 강 건너 뉴저지 여러 곳에서 산불이 났고, 브루클린에도 불이 났다. 그래서 뉴욕 전체가 연기로 휩싸였단다. 목이 매캐해서 나도 자꾸 기침이 났다. 마트에 가니 직원들의 절반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계산하며 물어보니 의무는 아닌데 목이 아파서 마스크를 꼈단다. 아까 안방 냄새가 잦아들었다고 생각한 건 거실도 같은 냄새가 가득 차서 우리 코가 둔감해져서 그런 건가 싶었다 ㅠㅠ 문을 열지 말걸, 마트에 애들 데리고 오지 말걸 후회가 막심이었다.


맨해튼 바로 강 건너 뉴저지에 불이 났단다


뉴욕은 오랫동안 비가 안 왔다. 지난 10월이 기록적으로 가물었다더니 11월에도 내내 비가 안 왔다. 그 와중에 낮 기온은 11월인데도 26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원래는 뉴욕과 한국 날씨는 거의 같은데 진짜 이상 기후였다. 그러다 보니 산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지역 뉴스에서는 소방관들이 끊임없는 산불에 지쳐가고 있다고 했다.


가뭄으로 인한 산불은 캘리포니아 일인 줄 알았는데, 겨울이면 습해서 폭설로 난리였던 뉴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이상 기후다. 우리나라에서 더위나 폭우가 심해지는 걸 겪어봤지만 그래도 그건 있던 현상이 심해지는 거였다. 이렇게 안 일어나던 현상을 일상에서 겪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아이 둘과 함께.


스모크 주의령도 나오고


갑자기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산불로 인한 스모크가 노약자들에게 얼마나 안 좋은지에 대해 쓴 논문들이 떠올랐다. 앞으로 이런 일이 만연할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정말 이상하게 몸이 축 처졌다. 기후 우울감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내가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도 걱정은 했지만 우울감 까진 아니었다. 아마도 기후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기 때문인가 보다.


시간이 지나니 기분은 좀 나아졌지만 더 걱정이 되었다. 진짜 앞으로는 어떻게 되려나.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커나가야 할까.


기후 변화는 거짓말이라는 트럼프는 그럼 이런 산불과 공기 질 악화는 어떻게 대처할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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