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59일 차
어제는 왠지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 틈만 나면 귀국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둘째가 밤마다 많이 우는데 며칠 연속 내가 재우고 데리고 자느라 지쳤던 것 같다. 괜히 화가 쌓이는 것 같아 오늘은 마음먹고 휴가를 냈다. 오늘은 뭘 알아보지 않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보통은 40분 정도 달리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카페로 빠졌다. 딱 1시간 책만 읽었다. 요 일주일은 신문도 책도 보지 못했다. 짬이 나봤자 아주 짧아서, 보통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로 뇌만 도파민에 튀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15분 정도는 도통 집중이 안 됐다. 그래도 계속 읽어보려 하니 이내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뭔가에 푹 빠지고 나왔더니 사우나를 한 것처럼 개운해졌다.
점심도 안 했다. 밀키트 100인분 폭탄을 맞은 후 숙제하듯 밥을 해댔는데 오늘은 외식을 했다. 우와 그 해방감이란. 집 근처 식당에 갔는데, 둘째는 아기띠 안에서 내내 자 주어서 남편이랑 얘기하며 즐겁게 먹었다. 음식도 맛있었고 웨이터도 굉장히 친절해서 좋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같이 육아하는 남편에게 고마움도 많이 표현했고, 첫째 픽업 갈 때 조금 일찍 나가 쉬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전에 끊어가길 잘했다.
이 기세를 몰아 저녁도 가장 쉬운 밀키트로 해치웠다. 둘째가 좀 칭얼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진짜 훌륭한 휴가였다. 아 잘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