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기왕 먹는 거면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한 끼를 먹어도 신중한 편이다. 예를 들어 닭갈비를 먹으러 춘천에 가거나 돼지국밥을 먹으러 부산에 가거나 하는 식이다. 브런치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브런치를 하는 곳이 많지만, 그래도 브런치를 먹을 때면 가능한 압구정이나 한남동으로 가서 먹었다. 물론 이 지역들과 브런치는 춘천과 닭갈비, 부산과 돼지국밥만큼의 개연성은 없지만, 이 지역들은 외국 음식이나 문화의 유입이 빠른 지역인 만큼 조금 더 현지 스타일에 가까운 브런치를 먹을 수 있다.
이번에 진짜 오랜만에 압구정으로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여자들끼리 주말 점심에 만나면 대개 브런치 약속인지라 예전에는 종종 갔었지만 임신하고는 좀처럼 압구정으로 간 적이 없었다. 집에서 딱히 가깝지도 않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지역도 아니라 가려면 운전을 해서 가는데, 임신 초기에는 입덧 때문에 먹는 것 자체를 꿈도 꿀 수 없었고 중기부터는 다리 저림이 생겨서 운전을 자제하고 있다.
임신을 하면 자궁에 혈관이 눌려 다리가 쉽게 붓고 저린다고 한다. 아직 중기인데도 벌써 다리가 불편하기 시작했다. 오후면 발이 부어 구두는 신을 수 없고 가끔은 쥐가 나기도 한다. 쥐 나는 횟수가 아주 드물긴 해도 언제 쥐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전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갈 엄두도 나지 않아 얼결에 브런치를 먹는 횟수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배가 점차 불러오면서 불편 증상은 더더욱 커지고 있었고, 아이가 태어나면 지금보다 더 다니기 힘들게 틀림없었다. 외려 나보다 더 걱정하는 친구들을 만류하고 압구정으로 약속을 잡았다.
브런치 식당들은 대부분 예약을 받지 않는다. 기다리기 싫어 일부러 아침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설마 10시부터 사람들이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말 설마가 사람 잡았다. 압구정에 도착했을 때 아직 10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브런치 집들 앞에 늘어선 줄들이 보였다. 서둘러 가기로 한 식당에 가보니 어김없이 대기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도 브런치 집들이 많이 생겼지만 여전히 이 지역은 브런지의 강호였다.
다행히도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미리 메뉴를 보고 앉자마자 주문을 했더니 음식도 금세 나왔다. 시킨 음식은 새우 샐러드, 에그 베네딕트, 오믈렛 총 3가지였다. 아침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와서 대기까지 하고 나니 지친 상태였지만, 음식을 한 입 먹으니 피로가 한 번에 가셨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샐러드에는 드레싱이 제대로 버무려져 나왔고, 에그 베네딕트의 홀란다이즈 소스도 제대로였다. 요리를 내오면서 서빙하는 분들이 그 자리에서 통후추를 바로 갈아주는데, 굉장한 맛의 차이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괜히 좋았다.
배가 조금 차자 주변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특히 옆 테이블의 어린아이 둘을 동반한 가족에 자꾸 시선이 갔다. 안 그래도 요즘 가는 식당마다 아이 동반 가능 여부를 눈여겨보던 찰나였다. 이 식당에 들어올 때도 노 키즈존은 아닌지, 아이 의자는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 가족이 계속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보면 볼수록 여긴 아이와 오기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식당은 노 키즈존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있기 힘든 환경이었다. 테이블이 작고 테이블 간 간격이 아주 좁았다. 아이들이 옆으로 조금 움직이면 옆 테이블 사람과, 뒤로 조금 움직이면 지나가던 종업원과 부딪혔다. 조심스럽지 않은 아이들은 목소리는 식당 안에 웅웅 울려 퍼졌다. 음식들도 아이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아니었다. 아이가 오는 걸 막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와 가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건 내 주말의 가장 큰 낙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한 주의 스트레스가 다 가시는 것 같았다. 그 한순간을 위해서 지방으로 찾아가거나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다닐 수 있다고 억지를 부렸지만, 이제 그만 인정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던 다른 많은 것들과도 한동안 이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잃는 게 있는 만큼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보람이 올 거다. 다만, 그 새로운 보람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고, 잃을 것들은 익숙한 것들이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에이 또 안 그러면 또 어쩔 텐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고, 찾아올 변화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