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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DII Sep 18. 2020

그때의 나, 지금의 나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게 많았다니!

사람은 쉽게 변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되새긴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고쳤으면 하는 게 보여도 고치길 기대를 하기보다는 ‘원래 그렇지’하며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한다. 그렇지만 고쳐지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


당장 나 스스로의 변화가 놀라워서 낯설 때가 있는데 가장 머쓱한 것은 내가 몇 달 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라는 점이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인에게 절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고 혼자 살겠다!라고 외쳤던 나였는데. 그래서 결혼을 한다 했을 때 심심찮게 들었던 이야기는 “결혼 안 한다며?”라는 말이었다. 또 하나는 내가 해산물을 먹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아직 먹을 수 있는 해산물이 매우 한정적이라 광어(광어회, 광어 초밥..) 정도만 먹을 뿐이지만 30년 사는 동안 입에 한 번도 대지 않던 회와 초밥을 꽤 자주 먹는다는 건 놀라운 변화이다.


대학을 다니고 있던 20대 초반까진 잘 몰랐다. 주변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나 예쁜지. 계절마다 꽃구경 가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길에 널려 있는 게 꽃이고 매년 똑같이 피고 지는데, 굳이 멀리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피곤하게 구경을 하는지. 지금은 꽃구경을 가기 위해 연차를 내기까지 한다. 스무 살의 내가 무거운 카메라를 챙겨 들고 하루를 통째로 꽃을 보기 위해 쓰는 현재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심지어는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러 가기까지 한다. 왜 이 예쁜 것들을 어릴 때부터 보러 다니지 않은 거야.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계절마다 꽃을 포함한 예쁜 것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난 자연스럽게 바깥 순이가 되었다. 분명 5년 전쯤까지만 해도 자칭, 타칭 집순이였던거 같은데. 평일엔 회사, 집 하느라 어쩔 수 없지만 쉬는 날엔 언제나 어딘가에 나가 있다. 집순이가 바깥 순이로 변화하게 된 것은 취미의 변화가 우선이었다.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고, 축구 직관을 다니고, 카메라를 쥐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려면 집 안이 아닌 바깥이어야 한다. 나를 바깥으로 이끌어준 취미의 변화는 내 성향에도 일부 영향을 주었는데,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와 만남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사진을 취미로 하다 보니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출사를 가게 되기도 하고, 매주 축구장을 다니다 보니 친구들이 생기기도 한다. 여전히 동일한 주제 안에서의 만남이 아니라면 꺼리는 편이지만, 무작정 새로운 만남을 피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도 어김없이 변화는 생긴다. 이 변화의 원인이 청소년과 성인의 시선 차이인지, 여러 번 겪으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가 바라보는 대상은 하나인데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봤을 때 다르다는 게 새로운 대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살면서 본 ‘인생 작품’을 꼽으라면 난 고민도 없이 해리포터 시리즈라고 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책과 영화를 복습을 하곤 하는데, 학생 때 처음 읽고 있는 도중에는 주인공 삼총사에게만 집중을 했고, 그들의 눈으로 사건들을 바라보곤 했다. 성인이 되고 다시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 주변의 어른들에게 더 집중이 되는 거다.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안 됐었던 덤블도어의 행동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루핀은 얼마나 멋진 어른이었는지. 또다시 읽을 때는 착하고 용감하고 똑똑해서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는 멋진 친구인 줄만 알았던 주인공 해리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하던지. 그리고 고작 영국에 있는 학교 하나 점령 못하는 동네 양아치 볼드모트가 어찌나 없어보이던지. 물론 몇 번을 다시 봐도 벨라트릭스와 엄브릿지가 말도 안 되는 악역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져서 무엇이든 새롭게 시도하는 사람에겐 변화가 익숙할지 모르겠으나, 날 때부터 변화와 도전에는 아주 보수적인 나에겐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다 커서 새로운 걸 접하며 알게 되고 입맛의 변화, 성향의 변화, 시선의 변화 등을 깨닫게 되는 게 꽤나 흥미롭다.


어떤 의도를 가진 노력으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지만 환경과 시간,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기는 사람의 변화는 여러모로 즐겁고 신기하다. 현재는 못 먹는 해산물이 훨씬 많지만 먹을 줄 아는 해산물이 더 많아지는 때가 올 수도 있고, 비혼으로 살겠다고 외쳤다가 결혼을 앞둔 사람이 된 것처럼 애는 낳지 않겠다던 현재의 다짐이 언젠가는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나에게 등산은 어차피 내려올 거 대체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는가 싶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이지만, 10년 뒤 가을에 나는 빨간 단풍을 보기 위해 산을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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