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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인생의 재발견#02.중년은 위기인가,기회인가(1)

(이미지 출처: unsplash)


중년기에 다시금 성장과 도약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과 지향을 깊은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성찰과 변화를 통해 자아는 한층 고결한 자원으로 통합되고 조화로운 인격으로 완성되어 가게 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


여러분은 ‘중년’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쇠퇴의 이미지

사람들에게 ‘중년’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물어보면 지쳐있는, 외로운, 우울한, 피곤한, 배가 나온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거의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사회 중년 남자들은 인생의 전반부를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고 그러기 위해 돈을 벌며 보냈다. 또 수직적인 문화의 직장에서 인정받고 더 높은 자리를 성취하기 위해 청춘을 바쳐 달렸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음주와 만성피로, 고용불안과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노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과중한 책임감 때문에 심리적 위기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중년은 ‘쇠퇴의 이미지’였다. 시력 저하, 흰 머리, 삐걱거리는 관절, 근육이 쑤시고, 얼굴 살이 처지며, 기억이 흐릿해지는 ‘중년의 위기’가 사람들의 상상을 지배해왔다. 중년의 쇠퇴 이미지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은 셈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중년은 쇠퇴의 이미지
외로운, 우울한, 피곤한, 시력 저하, 흰 머리, 삐걱거리는 관절, 기억이 흐릿해지는 ‘중년의 위기’가 사람들의 상상을 지배


중년을 위기와 불안의 시간으로 처음 묘사한 사람들은 주로 심리학자들이다. 자크나 융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중년기를 젊은 시절에 꿈꾸던 인생의 목표와 그런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시기이고, 자신이 늙어가고 있으며, 결국 죽게 되리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기이기 때문에 삶의 무의미함과 공허함 그리고 허무감이 찾아드는 과도기라고 했다. 레빈슨 같은 심리학자들은 중년기를 사춘기와 같은 격동과 혼돈의 시기라고도 했고, 최근 여러 심리학자들은 이 시기에는 가족에 대한 과중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변동과 좌절로 인해 심리적 위기를 경험한다고 이야기한다.


중년을 위기로 만드는 네 가지 요소

이렇게 중년을 위기로 묘사하는 사람들은 네 가지 요소, 즉 신체적인 요소, 경제적인 요소, 문화적인 요소, 심리적인 요소를 위기 요인으로 꼽는다. 


중년에 이르면 노안과 시력감퇴, 탈모, 흰머리, 체중 증가, 체력 저하, 고혈압 같은 신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면서 덜컥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이유는 이런 증상들이 더 이상 자신이 젊지 않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중년에게 ‘젊음의 상실’은 두려움이다. 그래서 중년들은 청년들의 낭만과 자유, 지치지 않는 체력 같은 ‘젊음’ 그 자체를 부러워한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레빈슨은 이러한 중년의 심리를 죽음에 항거하고 불멸성(immortality)을 소유하려는 대표적인 중년의 심리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질병이나 노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의 전주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시간에 대한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는 태어나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계산했다면 이때부터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질병이나 노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의 전주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중년을 위기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두 번째로 꼽는 요인은 경제적, 직업적 요소다. 중년 남자들에게 퇴직과 관련된 스트레스는 여러 가지 삶의 장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리고 심리적 안정감을 깨뜨리며 분노나 화병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남자들의 이런 심리를 잘 보여준다. 이들 조사에 따르면 50대 직장인들은 현재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중년들에게 직업은 삶에 중심축이자 심리적 안녕감에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직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는 곧 경제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중년 남자들은 인생의 그 어떤 단계보다 많은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 자녀들 교육비, 생활비 부담 그리고 부모세대에 대한 부양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중년 남자들 중 57%가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부모에 대한 부양책임을 지는 세대이자, 최초로 자녀로부터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다. 그래서 지금의 중년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젊음도 좋고, 직장에서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이것들 중에서 경제적인 안정감을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은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심리학에서도 직업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꼽는데, 특히 남자들에게 직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출발점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들이 자라면서 배운 전통적인 역할 모델은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성취를 하고, 성공을 해서 힘을 얻는 것이 남자들의 중요한 자아개념이 된다. 그리고 지금의 중년 남자들은 삶의 다른 영역을 희생하면서까지 이것을 쟁취하고자 했다. 그래서 중년 남자들에게 직업의 상실은 이러한 강력한 역할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고, 힘을 상실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죄책감, 무력감 같은 부정적인 심정과 함께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다. 


직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는 곧 경제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정체성의 위기와도 관련된다.


중년을 위기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세 번째로 꼽는 요인은 문화적인 요소, 사회라는 환경적 요소다. 젊음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젊음 사람 중심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중년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또한 40대만 되어도 퇴출 대상이 되면서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표현이 공공연히 쓰인다. 중년들에게 ‘젊음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이제 내가 쓸모가 없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중년 남자들은 젊어 보이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머리에 염색을 하고, 피부 관리를 한다. 멋스러운 스타일의 옷을 구입하고 성형이나 보톡스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년은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하다.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절반 밖에 오지 않았는데, 내리막길이라거나 쇠퇴라는 단어로 나이 듦에 대한 각본을 세뇌시킨다. 실제 우리가 가진 나이 듦에 대한 관점은 사회적 상황에서 그렇게 배워온 탓도 크다. 그래서 마흔 이후의 삶은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보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젊음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젊음 사람 중심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중년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중년을 위기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네 번째로 꼽는 요인은 심리적 요인이다. 중년을 위기로 묘사할 때 핵심적인 심리적 기제는 통제력 상실이다. 중년기는 대부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생에서 정점이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힘과 통제력을 상실하는 고통과 함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혼란이 공존하는 시기다. 그래서 남자들은 미래의 삶에 대해 더욱 걱정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애쓰면서 더욱 보수적이 되어 간다. 또한 중년의 중요한 심리적 기제 중 하나가 분리 상실이다. 젊은 자신의 모습을 상실하고, 부모나 친척 그리고 친구의 질병과 죽음을 목격하고, 때로는 배우자와 사랑의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삶이 혼란스럽고, 허무해지고, 우울해지고, 낙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중년 남자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심리적인 혼란이나 위기감을 경험한다. 그래서 중년 남자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다. 


(다음편에서 계속...)



이 글은 작가의 책 

'오십, 인생의 재발견'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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