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십,인생의 재발견#02.중년은 위기인가,기회인가(2)

(이미지 출처: unsplash)


중년기는 도전과 기회를 내포한 전환기다

중년기에는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변화 안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 평가해본다. 과거에는 중요했던 것이 지금은 덜 중요할 수도 있고,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 와서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재평가를 바탕으로 미래의 새로운 삶의 구조를 모색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생시계에서 각각의 단계에 과제가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것이 중년기의 과제다. 


중년들이 기억해야 할 점은 중년기라고 해서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년 남자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해 무언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다만 그 변화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청년기의 성장과 다를 뿐이다. 지금의 중년들이 경험한 청년기 성장은 이미 만들어진 경로를 따르는 것, 주어진 시간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다. 즉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과정에 따라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잡고, 한 단계 한 단계 승진을 하면서 선형적으로 그리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나갔다. 청년기 성장은 놓여 있는 여러 다리 중 어느 다리를 건널 것인가, 어떤 경로를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청년기 성장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경로를 따르는 것,
놓여 있는 여러 다리 중 어느 다리를 건널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자
주어진 시간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

이에 비해 중년기의 성장은 차근차근 단계를 거처 진행되지도 않고, 선형적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중년들을 안내할 적절한 경로도, 역할 모델도 거의 없다. 그래서 중년기 성장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이나 지식, 가치관 그리고 자신의 인적 자산이나 물적 자산에 따라 모두 다르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시도할지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중년기 성장은 ‘다리를 놓아가며, 그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중년들은 풍부한 삶의 경험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유능하고, 책임감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켜온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나보다 다섯 살 혹은 열 살 많은 선배들 중 중년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삶의 개척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청년기 삶 속에서 성장의 자원을 찾았다.


중년기의 성장은 차근차근 단계를 거처 진행되지도 않고, 
선형적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다리를 놓아가며, 그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인간은 중년이 되어서도 뇌는 계속 발달한다

심리학 연구 분야 중에 발달심리학이라는 영역이 있다. 발달심리학은 태어나서부터 영유아기,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에 이르기까지 마음과 행동의 발달 과정을 연구한다. 그 발달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변화’와 ‘적응’이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대부분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진보된 상태로 움직여간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환경에 더 잘 어울린다는 얘기는 그 환경에서 더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이런 것을 ‘적응’이라고 한다. 


이런 변화와 적응은 개인의 욕구와 환경의 요구에 따라 일생동안 진행된다. 당연히 중년기에도 중요한 변화와 적응이 일어나는데, 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영역이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거다. 그러나 이건 분명한 오해다. 


“요즘은 가끔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어요. 며칠 전에 분명히 거기다 세워둔 거 같은데 가보면 없는 거죠.” 

“그거 말이야, 그거... 그거 있잖아...어떤 단어나 이름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데 혀끝에만 맴돌아 괴로울 때도 있어요.” 


쉽게 까먹고 자주 깜빡거리는 경험을 중년들은 누구나 가끔 한다. 그럴 때면 나이 먹어서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싶다. 그러나 지능이나 지성은 늙어서도 그다지 나빠지지 않는다. 인지기능은 일생동안 증가와 쇠퇴가 복잡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어떤 차원에서는 중년기의 인지기능이 청년기보다 나빠지기도 하고, 어떤 기능은 유사한 반면, 다른 기능은 노년기와 닮았다.


예를 들어 절차기억이나 작업기억이라 불리는 인지능력에 대한 테스트 결과를 보면 20세 무렵에 절정을 이룬 이후 꾸준히 하락한다. 절차기억은 운동, 기술, 악기 연주처럼 몸으로 익혀 기억하는 것을 말하고, 작업기억은 경험한 것을 수 초 동안만 머릿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의 기억 중에서 수초에서 수분 안에 소멸하는 단기기억에 속한다. 외웠던 영어단어가 며칠만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 정보가 단기기억에만 머물렀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테스트는 주로 생각의 속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빨리 상황을 인식하고 지체 없이 결정을 내리는 능력, 빠듯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떤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데, 젊은이는 빨리 생각하고 빨리 답을 도출해내는 반면 중년들은 이런 것을 어려워한다. 뇌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빨리 생각하고 빨리 답을 도출해내는 반면
중년들은 이런 것을 어려워한다. 뇌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지기능의 일부가 쇠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년들은 그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자원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년들은 고차원의 기능을 사용하여 떨어진 반응 속도 보완할 수 있다. 구술능력, 공간 인식능력, 계산능력, 추론능력 등은 중년기에 최고수준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65세까지 별로 나빠지지 않는다. 이런 인지기능의 특징은 주로 실용적 측면과 관련된다는 점인데, 경험을 통해 습득한 암묵적 지식 같은 것이다. 즉 중년들은 단순기억보다는 상황을 분석하고, 아는 것을 적용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활용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는 거다. 중년의 인지능력을 다룬 최신 연구들은 중년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잘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중년들은 가족, 직장 및 사회에서 지적 기여를 하는데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중년들은 단순기억보다는 상황을 분석하고, 아는 것을 적용하고,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활용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


인지능력의 이런 변화는 심리학뿐만 아니라 뇌신경과학 연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MRI 장치를 통해 인간 두뇌의 구조와 활동을 살펴봤더니 나이를 먹음에 따라 우리가 사용하는 뇌의 영역이 변하더란다. 예를 들어 전전두엽의 활동은 젊은이들보다 중년들에게서 더 활발한데, 이 영역은 계획하고, 의사결정하고, 사회적 행동을 조율해서, 여러 가지 생각 중에 행동으로 옮겼을 때 가장 득이 되는 생각과 해가 되는 생각을 골라내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중년의 뇌는 젊은이의 뇌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그 결과가 더 좋을 때가 많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중년들은 정보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필 수 있고
그래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선조들은 이것을 ‘지혜’라고 불렀을 것 같다.
중년 남자들의 경쟁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러니 머리가 나빠졌다고, 기억력이 쇠퇴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중년들은 정보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필 수 있고 그래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 걸 소위 통찰력이라 부른다. 통찰력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근거와 상대적 사고를 사용해서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상위 수준의 인지적 능력이다. 이런 통찰력은 몇 가지 기초지식을 빨리 그리고 많이 외운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통찰력은 기존의 지식, 정보, 경험을 새롭게 조합해서 발견하는 것이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인 윌리엄 더건은 섬광 같은 통찰력은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 조각처럼 흩어진 정보들이 ‘번쩍’하는 통찰 과정을 통해 재결합할 때 생겨난다고 했다. 피카소도 빌게이츠도 그리고 하워드 슐츠도 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했다. 즉 통찰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우리의 머리와 몸에 저장된 경험과 지식의 양과 질’인 것이다. 그런 내공을 기반으로 찰나의 통찰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초보자의 통찰은 어불성설이다. 아마도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지혜’라고 불렀을 것 같다. 중년 남자들의 경쟁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다음편에 계속...)



이 글은 작가의 책 

'오십, 인생의 재발견'의 일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십,인생의 재발견#02.중년은 위기인가,기회인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