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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스토리 #06. 명함을 잃는다는 것(2)

중년 남성들에게 일과 직장은 어떤 의미이고 존재인가

(이미지출처: unsplash)


명함의 상실은 곧 정체성의 상실

  20~30여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 중년 남성들에게 명함의 상실은 곧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들은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일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직장에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직장이라는 곳은 어떻게 보면 저의 전부죠. 또 저의 노력을 저의 온 정열을 다 갖다 바친 곳이었고….” (대기업 퇴직임원 F씨) 


“와이프도 거의 10년 넘게 저한테 얘기해요. 당신하고 휴가는 고사하고 주말도 없었다고 얘길 하니까.” (중견기업 현직임원 G씨)


  이들에게 회사와 일은 출퇴근 시간이 무의미할 정도로 생활의 거의 전부였으며, 자신의 가치를 공유했던,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쳤던, 그들의 삶 자체였다. 그리고 긴 시간 직장 생활을 통해 쟁취한 성공과 성취의 표상이자, 지위를 상징하는 명함은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퇴직은 재직 당시 충족되었던 모든 심리적·사회적 자본을 한순간에 박탈당하는 사건이었고,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한 번에 모두 무너뜨리는 강요된 선택으로 인식된다. 


“누군가를 만나도, 명함이 딱 있잖아요. 명함 한 장이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런 게 다 없어지고 나면, 솔직해지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 솔직해지는 거 자체가 상처니까, 아픔이고.” (대기업 퇴직임원 H씨)


  중년 남성의 비자발적 퇴직 경험에 대한 스토리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조직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참석했던 각종 회의, 보고와 결재 그리고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한 논의와 고민이라는, 주어진 과제와 일상이 퇴직과 동시에 한꺼번에 사라진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찾는 사람도, 자신이 찾아야 할 사람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나 과제도 없이 텅 빈 스물 네 시간을 스스로 채워야하는 외롭고 공허하고 당혹스러운 일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혼란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고, ‘아무 할 일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들 중년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직장인으로서 역할과 공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준비하지 못한 퇴직과 그 이후의 상황 변화는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퇴직은 심리적·사회적 자본을 한순간에 박탈당하는 사건
명함의 상실은 곧 정체성의 상실
퇴직 경험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우성이며
퇴직 이후 적응 과정은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

  자아정체성(ego-identity)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학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개인의 영속성, 단일성 또는 독자성, 불변성이고 또 이와 같은 개인의 동일성에 대한 의식적 감각’이며,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지는 연속성과 단일성을 지닌 주관적인 느낌(Erikson, 1968)’이라는 입장도 있고,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의 특성 못지않게 자신이 형성하고 있는 관계망과 그 네트웍 속의 위치에 의해서 정의(한규석, 2020)'된다는 입장도 있다. 


  후자는 주로 상황과 맥락의 힘을 강조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입장이기도 한데, 이런 관점에 따르면 거대 조직에 근무하는 경우, 자기 자신보다 조직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보다는 조직의 정체성과 목표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 즉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직업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이자 목표이고, 자부심과 성취감을 얻는 수단이요,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도구이다. 또한 정체성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 칼 필레머(코넬대학교 교수)


  한국 사회 중년 남성들이 직장과 일을 중심으로 구성해왔던 정체성은 고도 성장기 한국 기업이라는 맥락에서 그들이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내왔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왜 단일하고, 독자적이고,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구성하지 못했는지 실망하거나 자책할 이유도 없다. 

  그 시절엔 그 시절을 지배했던 게임의 법칙이 있었고, 그 게임의 법칙에 충실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가 있는 것 아닐까? 그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던 만큼, 이제 달라진 상황과 맥락에서 열심히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시작할 일이 남은 셈이다.


“성인이 되면 자아가 완전히 확립되어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변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믿음이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자아와 정체성은 정확히 재단되어 굳어진 구조가 아니라 계속 변모하는 과정이다……진정한 자기 계발이란 겉보기에 타인보다 나를 더 나은 자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존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진정한 모습을 찾는 과정이다.”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인 마리오 알론소 푸익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퇴직, 사회적 죽음에 입맞추는가?

 중년 남성의 퇴직과 퇴직 이후 적응 과정을 이해하는데 심리학자인 Williams의 사회적 배제 또는 배척(social exclusion 또는 ostracism)이라는 관점을 참고할 만하다. 사회적 배제란 다른 사람에 의해 무시당하거나, 배척되거나, 혼자가 되거나, 소외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모임에서 의도적으로 배척되거나 소외당하는 것, 직장에서 잘리는 것 또는 팀의 구성원으로 선택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 등을 말하는데, 이런 배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뭔가 관계를 맺거나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와 관련한 연구들에 따르면 이렇게 배척당하고 무시당하고 따돌림당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소속의 욕구, 자존감을 높게 유지하려는 욕구, 통제 욕구, 의미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유지하려는 욕구에 위협이 된다. 


  먼저 배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동기인 소속의 욕구를 가장 명백하게 위협한다. 소속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정신적·신체적 아픔을 겪고 무기력 해진다. 배제는 또한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자아존중감을 낮아지게 한다. 심리학자인 Leary는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수용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지표로 사회적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사회적 관계가 원만하고 성공적일 때 자아존중감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을 때 자아존중감이 낮아진다고 한다. 

  배제 당한 사람은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받기 때문에, 어떠한 노력으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적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위협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 쓸모 없는 존재라는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되어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위협받는다. 사회적 배제는 가장 극심한 형태의 처벌로, 이 ‘처벌’은 종종 “사회적 죽음 (social death)”을 의미한다. 


퇴직은 소속의 욕구, 자존감을 높게 유지하려는 욕구, 
통제 욕구, 의미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유지하려는 욕구를 위협하는 사건
사회적 관계를 손상시키고, 심리적 문제도 야기
뭔가 억지로 아닌 척 참아내고 꾸며내기 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쳐다보는 시간 필요

  이러한 배제 경험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기능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는데, 예를 들어 자기조절 능력을 손상시키거나, 무기력한 수동성을 보이고, 다양한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사회적 배제는 논리적인 사고나 추론 같은 인지적 사고 능력을 나빠지게 만들었고, 건강이 나빠지거나 부정적인 심리로 인해 고통받게 만들었다.


  비자발적으로, 갑작스럽게 퇴직을 하게 된 상황이라면, 어렵겠지만 Williams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설명을 떠올려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장면에서 나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 양식이 다 비슷하다는 것, 원래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억지로 아닌 척 참아내고 꾸며내기 보다는, 그리고 뭔가 급하게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기 보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쳐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먼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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