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 트럼프 2기 출범, 국내 소비지출 저하, 환율과 금리 등 다양한 변수들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내외 경기 둔화와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대기업들도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임원들의 주 6일 근무 확산인데, 조직 내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긴장감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 신규 채용보다 내부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조직개편 등을 통해 조직 구조를 최대한 효율화하고, 각종 복리후생과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하는 등 위기 대응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다.
불안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에서 불안은 인간의 생존 역사와 함께해온 필수 현상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불안은 위험을 경고해주고, 그것에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적응적인 기능 덕분에 우리는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노후를 대비해서 돈을 아끼고 모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비상경영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려는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위기와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이유는 첫째, 불확실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정보나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뇌는 이런 부정적인 정보나 사실을 확대 재생산시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여기에 집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을 예상한다면 일에 몰입이 될까? 불확실성은 불안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둘째, 지나친 걱정과 불안은 생각의 폭을 좁힌다. 또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더 크게 지각하도록 해 새로운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리스크가 있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보다 리스크가 거의 없지만 현상은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경영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고, 혁신하기'를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는 어렵게 된다.
셋째,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더 나쁜 결과를 선택하기도 한다. 와튼스쿨의 캐서린 밀크먼 교수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올지 모르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 사람들의 의지력을 고갈시켜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대안보다는 즉각적이고 별로 유익하지 않은 대안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밝혔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인 전략은 보이지 않는데 임원들이 주말에도 출근하고, 직원들을 1시간 일찍 출근시키고, 복리후생비를 줄이는 것 같은 허리띠 졸라매기식의 대책은 최대한 빨리 불확실성을 없애려는 조급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는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인간의 창의성과 자발성 그리고 동기를 훼손하는 모순적인 시도다.
202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여러 경영인들은 이런 시기에 가장 필요한 패러다임으로 신기업가정신을 말했다. 아마도 지금 기업가정신이 다시 강조되는 이유는 기업가정신이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기회를 포착하는 것, 변화를 탐색하고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도전과 혁신 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 입장에서 볼 때 직원들에게 기업가정신을 바라는 것은 경영진의 무리한 기대다. 그들은 기업가나 창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불확실한 상황에서 좋은 전략이 나올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리더십이 더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 첫째, 기회를 탐색하고 아이디어를 다듬을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면 보수적이 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게 된다. 아칸소대학 심리학과의 스콧 아이델먼은 시간적 압박이 있는 상황 그리고 인지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 대한 실험에서 '긴급하고 시간이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현상에 머무르려는 것 이외의 다른 전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영진들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빨리, 많이, 좋은' 대책을 요구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여러 복잡한 문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 뛰어난 직원들조차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혁신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혁신의 飛上을 막는 비상경영
주6일 근무·근로시간 연장 등
저성장기 화두가 된 비상경영
"설마 다음 구조조정 대상은 나?"
내부 위기의식 확산은 되레 毒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가
혁신 발목잡고 나쁜 선택 유도
조급하게 구성원 들볶지 말고
리더부터 달성 목표 제시해야
둘째, 리더들은 결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시카고대학의 크리스토퍼 시 교수는 선택지가 한 번에 하나씩 제시되고 독립적으로 평가되는 상황과 선택지가 동시에 제시되고 쉽게 비교될 수 있는 상황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는 기업에서 전략의 우선순위나 예산을 결정할 때 합리적 결정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컨대 요즘처럼 불확실한 가운데 신기술 투자와 영업이익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기술 투자가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판단했더라도 여기에 영업이익 그래프가 함께 놓이면 판단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성과가 모호하고 불분명한 신기술 투자보다 단기적이며 생생한 영업이익이 자신의 이익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택 상황에서 직원들의 정서적 반응이 분석적 결과를 압도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리더들은 중장기 전략이 단기 전략에 밀리지 않도록, 직원들이 실패의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도록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손자병법의 모공 편에 나오는 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것을 바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직원들이 리더가 보는 것을 같이 보게 할 수 있는 공감과 지혜가 더욱 필요한 시기다.
이 글은 저자가 매일경제에 기고한 칼럼(불안은 영혼과 기업을 잠식한다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 2025.1.23)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