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매일경제)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 중 2편인 리로디드(Matrix Reloaded, 2003)를 보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이 연기했던 키메이커라는 인물이 주인공 네오에게 다른 세계(소스의 백도어)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전달하고 죽게 되는 장면에서 키메이커가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멘트를 한다.
"이게(=네오에게 열쇠를 전달하는 것) 제 목적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It is my purpose. It is the reason I am here)."
악역으로 나오는 스미스 요원도 말하기를 "우리를 만든 건, 우리를 연결하는 건, 우리를 끌어당기는 건, 우리를 인도하는 건, 우리를 움직이는 건, 우리를 정의하는 건, 우리를 묶는 건, 모두 목적이고, 목적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트릭스 2편에서 가장 많이 나온 대사 중의 하나는 목적(purpose)이었다. 도대체 목적이 뭐길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는 목적(purpose)과 목표(goal)의 의미를 혼동하기 쉽다. 거칠게 구분해 보자면, 목적이란 '어떤 행동의 의도나 이유'이고, 목표란 '어떤 행동으로 얻는 대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목적이 추상적이라면, 목표는 구체적이다. 따라서 모든 책이나 논문 앞쪽에 기술되어 있는 '이 글의 목적'이란 내용의 요약이나 기대하는 바가 아니라, 그 글의 존재 이유가 된다.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이 '완수해야 할 일(job to be done)'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전동 드릴 그 자체가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벽에 구멍이 필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드릴을 구매하는 것이다. 구멍을 뚫을 수만 있다면 드릴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한 것도 목적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골든서클 이론으로 유명한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이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책에서 왜(why)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당신의 신념, 목적,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른다고 말한 것도 동일선상의 논리다.
그래서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why 캠페인 같은 것을 진행하고 있고,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도 조직건강도 진단(Organizational Health Index) 9개 범주 목록에 목적을 새롭게 추가해서 강조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개인과 기업들이 위기 상황에서 회복력이 더 강하고, 일상에서 개인적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과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이제 리더십 영역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을 어떻게 잘하는지'에서, '그것을 왜 하는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는지였다. 그래서 경험과 노하우, 짬밥이 중요했다. 지식이 곧 능력인 셈이다. 따라서 박학다식하고 전지전능하면 최고이고, 그런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의 양(量) 측면에서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지식의 활용 측면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짬밥은 인공지능 엔터키 한 번에 무력화된다.
그 결과 점점 리더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무엇을 믿는지, 목적과 의미가 새삼 중요해지고 있다. 그 리더의 목적을 내가 인정하고 동의한다면 따르게 된다는 말이다.
혼자서 악당 무찌르는 슈퍼맨이냐
좌충우돌 함께 해결하는 뽀로로냐
모두 어떤 목적을 향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다 달라
연봉·승진·매출만 바라보며
달리는 리더 낙오되기 쉬워
나를 믿고 동료들 따르도록
존재 이유 분명히 하는것이
길고 긴 인생게임의 원동력
비유하자면 모든 소비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던 서비스가 세분화된 것이다. 예를 들면 가성비를 중요시하면 코스트코를 가면 되고, 신속 배달이 우선이면 쿠팡 로켓배송을 누르면 되고, 당장 구입하자면 가까운 편의점을 가게 되고, 정겨운 인간미가 그립다면 동네 슈퍼를 이용하면 된다.
혼자 악당들을 해치우는 슈퍼맨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뽀로로 리더십의 시대가 된 것이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에 뽀로로를 믿고 친구들이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 입장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혼돈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가 될 것이다. 리더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그것을 분명하게 만드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달성되지 않는다. 어디 가서 배울 수 있는 학원도 아직은 없어 보인다. 최소 2~3년 정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문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지?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그 통찰이 현재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여러 일들 중에 유독 더 큰 성취감을 맛본 것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유일한 모범 답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본인의 목적은 돈이라고 답한다면 그건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연봉과 승진, 조직 차원으로는 매출, 이익, 브랜드, 경쟁력 등. 이런 것들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따라올 수 있는 결과 변수들이다. 그것만을 바라보고 달린다면 그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왜? 에너지가 곧 소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인생 게임은 100m 전력 질주가 아니라, 42.195㎞ 마라톤에 가깝다. 내 에너지는 내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이 글은 필자가 속한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김도환박사가 매일경제(혼돈의 시대, 더 중요해진 리더십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