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텃밭

by SOME


길 건너편에 줄지어 선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 덕분에, 창 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온통 초록이었다. 나는 거실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시야 가득 들어찬 녹음을 응시했다.


유월의 한낮은 덥고도 푸르렀다. 나는 아들의 텃밭에 대해 생각하며 손에 쥐고 있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장식물을 데굴데굴 굴리는 손장난을 쳤다. 일곱 살 아들은 요즘 들어 작은 화분들이 모여 있는 현관 옆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편의를 위해 ‘텃밭’이라 부르는 그 공간에는 할인한다고 사온 대파 한 단을 쑥 꼽아둔 화분 옆으로 작년에 심은 양배추 모종이 자라고 있다. 대부분의 화분에는 아들이 미술 센터에서 받아온 무 씨앗이 뿌려져 있었는데, 씨앗을 얼마나 잔뜩 뿌렸던지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무순이 올라와있었다. 무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플라스틱 장식물을 처음 보았던 날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저녁. 잘 준비를 마친 아이는 가만히 식탁에 앉아있었다. 여느 날처럼 종이접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작은 단추 같은 것을 손에 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다가가며 곁눈질로 봤는데, 단추가 아니라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장식이었다. 투명한 재질의 둥근 플라스틱이 가운데 위치했고, 주변을 감싼 장식은 금색으로 도색되어있었다. 제법 반짝거리기도 하는 것이 얼핏 화려해 보였다.


“엄마, 이거 봐봐.”


가까이서 보니 무척 조잡스러웠다.


“학교 운동장에서 주웠어.”


어떤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 등에서 떨어진 장식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퍼뜩, 아이 손을 씻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식탁 위에 놓인 색종이에 ‘행복해’라고 적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너무 행복해.”


“이걸 주워서?”


“응.”


솔직히 고백하건대, 운동장에서 주웠다는 그 조각에 붙어있을 수많은 세균들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아이의 말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 운동장을 지나갈 때 길고양이들이 모래밭에 변을 보는 장면을 종종 마주쳤단 말이다. 상당히 들떠 보이는 아이의 손을 씻기고 싶은데, 저 플라스틱 조각도 함께 씻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제 우리는 부자가 되겠지?”


“... 으응... 응?”


성의 없이 대답하며 아무래도 저 플라스틱 조각도 함께 씻어서 주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가 길에서 뭔가를 주 워온 게 처음은 아니었는데 주로 돌멩이나 나뭇잎 같은 자연물이었기 때문에 씻어 줄 생각을 못했었다. 아니... 차라리 저걸 제 자리에 돌려놓으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이걸 팔면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


그제야 아이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판다고? 왜?”


“돈 받으려고.”


잠깐 딴생각을 한 대가는 명확했다. 그 순간 아이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이건 분명 다이아몬드겠지? 나는 너무 행복해...”


그제야 아이의 오해를 깨달은 내 눈동자가 커졌다. 차분한 대화가 필요했다. 아이는 그 플라스틱 조각이 정말로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이루어진 보석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조각을 함께 발견한 다른 아이에게 자신이 종이 접기로 만든 팽이 2개를 주면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들은 그 아이가 이 보석을 못 알아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당히 가성비 좋은 교환을 했다고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말없이 눈만 깜빡였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이렇게 말했다.


“... 그건... 보석이 아니고, 그냥... 플라스틱이야...”


말을 내뱉기 무섭게 후회가 몰려들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로 있다고 믿는 일곱 살이다. 그냥 말하지 말걸 그랬나... 시간 지나면 스스로 깨닫게 될 텐데... 굳이 내가 나서서 꿈을 깨야 했나..?


예상대로 아이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다며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도 했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유튜브를 켜서 플라스틱으로 보석 가공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이는 영상 이 끝나고, 손을 깨끗이 씻고-보석도 깨끗하게 세척했다-,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말없이 조용했다. 이후에도 아이는 미련이 남 은 얼굴로 조용히 플라스틱 조각을 바라보곤 했다. 일확천금의 꿈을 이뤄줄 다이아몬드가 사실은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했다니... 자기 딴엔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들의 텃밭에 옹기종이 싹을 틔운 아기 무순들을 솎아주려고 했던 날이었다. 나를 말리던 아이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저녁으로 무 싹을 보며 벙긋벙긋 웃던 아이였다. 무를 더 크 고 튼튼하게 자라게 하기 위한 도움을 주는 거라는 내 설명에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집이 떠나가라 엉엉 울던 아이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거 팔아야 돼! 제발 뽑지 마!”


울음기 어린 목소리가 담고 있는 내용은 꽤 익숙했다. 뭘 또 팔아..?


“아직 두 장밖에 안 난 무순의 떡잎을 보며 팔 생각을 했어?”


“열개도 넘고 이십 개도 넘으니까 나는 다 팔 거야!”


그동안 틈나는 대로 텃밭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이유가 설마? 나는 며칠 전에도 새싹들을 바라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 던 아들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렸다. 생명의 신비라던가 키우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기운이 빠진 아이는 흐느끼며 화분들 사이에 주저앉았다.


“크게 키워서 돈 벌어야 되는데, 왜 못하게 해...”


일상에서 내가 돈돈 거렸던 경우가 많았던가...? 자기반성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돈 가지고 뭐 할 건데?”


“엄마랑 놀 거야.”


“돈이 많아야 엄마랑 놀 수 있어?”


“내가 돈 많이 모으면 엄마 일 안 해도 되잖아. 맨날 엄마랑 놀 거야!”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고, 동시에 며 칠 전의 플라스틱 조각 사건이 생각났다. 식탁 앞을 오가며 조각을 쳐다보던 그 우울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는 대답 없이 서있는 엄마의 앞을 막았다. 정수리에 삐질삐질 땀방울이 맺혀 있다. 아이를 달래 집으로 들어가면서, 노랗게 죽어가는 무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쁜가 몰래 솎아버려 한둘만 남은 무순을 마주하게 되는 게 더 나쁜가 고민했다. 자꾸만 아이의 목소 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돈 많이 모으면 엄마 일 안 해도 되잖아. 맨날 엄마랑 놀 거야.


언젠가 이 아이가 자라서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아졌을 때 오늘의 이 순간을 떠올리며 웃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웃음에 씁쓸함이 아닌 쾌활함이 담겨있기를. 운동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석을 줍던 당시의 두근거림도, 보석이 아니라 그저 플라스틱 조각이었음을 알았을 때 실망감 같은 것들도 모두 모두 보석보다 값진 추억으로 남기를. 결국 무순은 누렇게 변한 뒤에야 솎아낼 수 있었다.


나는 회상을 멈추고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플라스틱 장식을 예쁜 보석함에 담았다. 고급스러운 벨벳 천위에 올려진 조각이 꽤 그럴싸해 보인다. 유치원 마치고 집에 온 아들이 좋아하겠지? 기대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석을 주워 팔고, 무를 키워 팔겠다는 아들의 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로 기록하고, 마음에 간직해야지. 잘 익은 초여름의 살구처럼 달콤한 추억을 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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