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썬 팩트

by SOME

일곱 살 아들이 썬 팩트를 사달라고 졸랐을 때, 나는 무심결에 "안 돼."라고 대답했다.


아들이 원했던 건 연한 분홍색의 동그란 커버 위에 흰색 천사 날개가 양각으로 새겨진 사랑스러운 화장품이었다. 집에 있는 썬크림은 싫고, 그 분홍색의 예쁜 썬 팩트가 필요하다고 고집을 피운다. 청출어람이라, 나를 꼭 닮은 아들의 고집은 엄마의 그것을 넘어선다. 며칠을 시달리던 나는 약간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게 도대체 왜 필요한데?!"


"예쁘니까!"


"그러니까 예쁜 게 왜 필요한데!"


"그냥, 예쁘니까 갖고 싶은 거지! 나는 예쁜 거 가지면 안 돼?"


"아니, 그건 꼭..."


그건 꼭...

여자애들이 쓸 것처럼 생겼잖아...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었다. 후욱, 들이쉰 숨을 힘없이 내뱉고, "그래, 한 번 생각해보자."하고 대답했다. 내가 저런 문장을 떠올렸단 걸 스스로 믿을 수 없었다. 여자애들만 쓸 것 같이 생겼다니!!


'그러니까 남자애가 쓰기에는 너무.. 너무 분홍색이 많고..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아니, 미쳤나 봐... 그럼 남자애들은 사랑스러운 물건을 쓰지 말란 뜻이야?'


'저런 걸 들고 다니면 엄청나게 놀림받을 걸! 아이가 놀림받길 원해?'


'놀리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 아닐까... 취향에는 자유가 있지...'


'아들이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를 바래?'


'니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성차별이야!!'


하.. 제발..

생각을 강제로 멈추게 하고 싶을 정도로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은 하난데, 아들의 취향을 존중하느냐, 주변에서 보기에 문제없을만한 무난한 취향을 추천하느냐 하는 갈등이 엄청났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도 부모는 자녀의 선택지를 넓혀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해마다 사이즈가 맞는 원피스를 하나씩 꼭 사주었다. 굳이 입으라고 강요하지도, 입지 말라고 말리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옷장에 걸어두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아들은 원피스를 입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뿐 아니라 굉장히 편한 옷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아이로 자라났다.


콩순이나 미미, 쥬쥬 이런 것들은 한 번도 사달라고 한 적 없었지만, '토끼 키우기'같이 남자아이들이 그다지 흥미 있어하지 않을 법한 돌봄에 관한 장난감은 사 준 적이 있었다. 아들 하나뿐인 우리 집에는 주방놀이 장난감도 한가득 있다. '남자 장난감, 여자 장난감 나눠서 제작하고, 판매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온통 새파란 색 천지인 장난감 코너에 가면 갖은 로봇과 장난감, 총이나 칼, 활동적인 놀잇감들이 가득하다. 주로 분홍색과 흰색으로 점철된 공간에는 늘씬하고 머리카락이 긴 여성의 모습을 한 미미, 쥬쥬 같은 인형들과, 돌봄 노동에 관련된 요리, 청소 등의 놀잇감으로 차있다. 저 새파란 총, 칼만 갖고 놀던 애들이랑, 남을 돌봐주고, 자신을 꾸미는 분홍색 장난감들만 갖고 놀던 애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 이거지? 생각할수록 이상하면서도 부아가 치미는 일 아닌가.


남자애들은 원래 저런 거 잘 못해!라는 핑계에 이런 성차별적인 놀잇감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 SNS 지인들만 봐도, 생일에 분홍 구두를 선물 받은 딸과, 레고 조립세트를 선물 받은 아들들 사진이 수두룩하다. 그저 예쁘게 꾸미고, 잘 보이고, 잘 돌보고, 착하고, 배려심 깊은 그런 여자아이를 잔뜩 만들겠다는 정부의 음모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일률적일 수가 있냔 말이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바깥에 나가서 활동적으로 놀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제공받고, 까불다가 다쳐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다. 도전하고 실패하지만, 다시 도전하는 그것은 전 인류에게 권장되는 덕목이지만, 유독 한쪽 성별에게만 더 많이 권장한다. 얌전하고 돌봄에 특화된 남자아이는 이상하게 보는 이 사회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며칠을 더 고민하던 나는 결국 연분홍색의 사랑스러운 썬팩트를 결제하고야 말았다. 택배기사가 다녀간 날, 아들은 아끼는 원피스를 꺼내 입고, 우산을 쓴 채(용도를 모르겠다), 거실에서 썬팩트로 화장놀이를 하며 놀았다. 나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데, 대체 뭘 보고 저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제는 미용실에 간 아들이, 엄마처럼 단발로 머리를 기를 거라고 떼를 써서 식은땀이 흘렀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단발머리를 하고 유치원에 가겠다는데... 아이가 (주변의 시선으로 보기에) 무난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과,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든 관계없이) 그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또다시 충돌한다. 시크릿 쥬쥬보다 변신로봇 또봇을 더 좋아하고, 엄청 까불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는 동시에 매우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아낀다. 이왕 원피스도 잘 입고 다니는데 머리카락 좀 길면 어때? 애가 저렇게 원하는데... 머리 좀 긴다고 무슨 문제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보여지는 소스들을 여자-남자라는 성별 두 가지로 딱 나눠서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 알지만...


"넌 남자인데 왜 그래?"


라는 질문에 상처 받을 아이를 상상해보면 결정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날은 앞머리만 정리하고 집에 왔지만,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 점점 그 무게를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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