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된 소녀

엄마의 엄마 이야기 2

by SOME


시골소녀는 낯선 시골로 시집갔다. 대추 할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남자의 집에는 아주 아주 넓은 밭이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밭이었다. 약간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크기의 집이 밭들 가운데 휑하게 서 있다. 페인트칠이 조금 벗겨진 대문을 열면 시멘트가 깔린 마당이 나왔다. 시골 마을의 흙바닥과는 대비되는 마당이었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면 구멍 난 양말 아래로 샛노란 장판이 반짝였고, 손질이 잘 된 나무 루바가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에게는 '어머니'와 '언니'가 생겼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경험은 아주 낯선 것이었다. 집에는 어머니 말고도 남자의 누나가 함께 살았다. 타인들 속에서 소녀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소녀의 남편은 그 집에 없었다.


남자는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몇 번의 밤을 보내고, 남편이 도시로 떠나면, 소녀는 남자의 어머니와 누나와 지냈다. 두 여인은 소녀에게 냉담하다 못해 이상 태도까지 보였다. 소중한 내 아들, 내 동생을 네까짓게 감히 뺏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감히, 네까짓게 감히. 소녀는 기가 죽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소녀는 동생을 챙기던 것처럼 남편의 누나를 챙겨야 했다. 똑같이 밥을 하고, 집안 청소를 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밭에서 보냈다. 처음 해보는 밭일에 험한 욕설과 때로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네가 잘못한 거야. 일을 이따위로 하다니. 손이 야무지대서 좋아했더니 완전히 속았지 뭐야. 눈물에 목이 메었지만 뭘 잘했다고 울기까지 하냐며 또다시 매질이 이어졌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밥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결혼을 선택했는데, 도리어 밥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해야 할 집안일은 두 배로 늘었고, 밭일에 손과 발이 부르텄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혼나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밭일을 해냈다.


오늘은 욕을 덜 먹었다며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어느 저녁이었다. 상추를 잔뜩 넣은 보리밥을 고추장에 슥슥 비벼 먹다가 갑작스레 치받는 토기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랄로 한다, 지랄로."

"묵기 싫으면 치아라 마. 토하고 지랄이고."


주린 배를 끌어안고 끙끙대며 베개에 머리를 댔지만 몸이 이상했다. 속이 좋지 않은 데다 몸이 오들오들 떨려와서 감기가 오려나 싶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한여름에 무슨 감기냐며 남자의 어머니와 누나의 구박이 이어졌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마, 아직도 이가 뿌득 뿌득 갈린다."


뽀얗던 소녀의 손등은 갈라지고 부르터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곱아들어갔다. 순식간에 육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 옛날 결혼이라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던 자신을 회상하는 소녀의 얼굴엔 이제 옛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초롱초롱하던 눈동자는 빛을 잃은 지 오래였고, 동네에서 제일 하얬던 피부는 새카맣게 그을려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피부를 뒤덮은 검은 주름들과 검버섯.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운 안색의 노인이 된 소녀가 앉아있다.


"그기 아마 느그 삼촌 임신했을 땐 기라. 시바 연놈들이 아를 뱄으면 먹을기라도 제대로 주야 될 거 아이가 말이다. 토한다고 패고, 어? 배 나와서 밭일 못한다고 지랄로 지랄로... 하이고."


"할머니, 그냥 그 집에서 나오지 그랬어요."


"내가 너무 애리따아이가. 애리가꼬. 뭐가 뭔지 천지 분간이 안될때제. 그때가 열네 살 땐가? 열... 한 다섯인가?"


"그럼, 할머니는 몇 살 때 결혼을 한 거예요?"


"모르겠다 마, 기억도 안 난다. 고생을 하도 해가꼬, 기억이 뒤죽박죽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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