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 Apr 08. 2023

할머니가 언제 재혼할 거냐고 물으셔서

잠깐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모종의 이유로 아주 오래 소식을 듣지 못했던 외할머니와 최근에야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는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죄 빼앗기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빛 한점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지내고 계셨다. (할머니의 재산에 손을 댄 자식에는, 당연하지만 내 친모도 포함된다.) 할머니는 그간 쌓였던 응어리를 풀어내듯, 몇 시간에 걸쳐 지난 세월을 하소연했다. 눈물과, 호소하는 목소리, 그리고 쿨쩍쿨쩍 코 먹는 소리까지. 우습게도, 서럽게 우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건강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남 욕을 할 정도로 정정하시고, 사리분별도 잘하시고, 기억력도 짱짱하신 모습에 안심이 되어서.


 어쨌든 나는 바쁜 일정을 뒤로한 채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 들렀고, 몇 달쯤 지나자 할머니도 지겨워졌는지 하소연을 멈추셨다. 당시의 할머니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반지하에 있는 월세방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고양이 똥' 얘기를 자주 하셨다. 창문을 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 집의 담벼락이 보이는데, 그 아래 매번 똥을 싸놓는 고양이들 때문에 창문을 닫아도 냄새가 심하다고. 현관 밖 자그마한 공간에 고양이 밥 주는 걸 좋아하시는데, 배은망덕한(?)고양이들은 건물 앞에서 밥을 먹고 뒤로 돌아가 똥을 싸댔다. 한두 해 쌓인 게 아닌지 산처럼 그득그득 쌓인 똥들이 여러 무더기였다. 낡은 창틈으로 바람이 덜걱거리며 스며 들어오는 집이라 냄새도 늘 함께였다. 창문엔 창살이 좁은 방범창이 꽈악 막고 있어 청소하러 손을 넣을 수도 없었다. 집들이 간격 없이 지어져 있어, 건물 뒤쪽으로 가려면 담벼락을 타고 위험천만한 길을 한참 지나야 했다.


 "여~가 아주 예전에 전쟁 때 피난민들 살라고 지은 집들이 모여있다카데...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어가 집 뒤로 돌아가지를 몬해.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동네라... 저노무 똥 냄새만 아니면 해 안드는거야 어째 참고 살것는데. 숨이 칵 막힌다 아이가."


 할머니는 앞에 놓인 과일에는 손도 안 대고 열변을 토하셨다. 옆에 앉은 나는 조용히 승오에게 과일을 먹이며 똥 치울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여간해서는 남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남자친구가 어쩐 일로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그는 바깥으로 돌아가 한참 담벼락 근처에서 서성이더니, 이내 훌쩍, 담장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아~이고! 위험쿠로 거 만다 올라가요! 내려오소 고마!"


 할머니는 남자친구의 기행을 마주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집으로 도로 들여보냈다.


 "할머니, 쟤가 알아서 하겠죠. 좀 놔둬봐요."


 "아이고 안된다! 클 난다잉!"


 남자친구와 마주친 눈을 찡긋 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뭔가 서석, 서석... 돌가루 떨어지는 소리, 벽에 무언가로 비비적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창문 근처에서 '나 보여?'. 남자친구였다. 어떻게 거기까지 들어간 건지... 나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서둘러 비닐봉지 두 개를 주었고, 꽤 커다란 비닐에 고양이 똥이 금세 가득 찼다. 똥은 모아서 집 안으로 옮긴 다음 버렸고, 호스를 연결해 물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혹여나 남은 잔여물이 이웃집 창가에서 멈춰버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까 걱정되었는지, 그는 그 좁은 공간을 깨끗하게 물로 싹 청소했다. 눈치만 보던 승오도 옆으로 와서 도울건 없는지 기웃댔다. 남자친구는 내가 전달한 락스를 바닥에 약간 붓고 주변을 꼼꼼히 확인한 다음 다시 벽을 타고 그 공간을 벗어났다.


 일련의 상황이 지나간 이후, 할머니는 깨끗해진 창 밖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더니 눈물을 내비치셨다.


 "애미가 어찌 사는지 디다보는 자식새끼 하나 없는데, 참으로 고맙소잉. 내가 저 고양이 똥 때문에 2년을..."


 나, 남자친구, 승오는 안쓰러운 마음 반, 뿌듯한 마음 반으로 할머니를 둘러싸고 다독거렸다. 울먹거리던 할머니는 한참 고양이 똥 얘기를 하더니 이내 또 다른 얘기를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셨고,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할머니는 돌아가는 우리 차에 반찬을 한가득 실어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셨다.


 그날 이후로 양이들은 단 한 번도 창가에 똥을 싸지 않았고, 남자친구의 평가가 수직상승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 똥 얘기를 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이 되자 지겨워지셨는지, 지금은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미래 계획에 대해 물으신다. 차마 남자친구에게 묻지는 못하겠는지, 내게 따로 전화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는 결혼은 언제 하꺼고?"


 그러면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대답한다.


 "안 할 건데요."


 "왜 안 해! 결혼을 해야지! 그 남자분이 싫다 카더나?"


 "아니요, 그런 건 안 물어봤는데, 그냥 내가 싫어요. 결혼은 다시 안 하고 싶어요."


 "둘이 좋으면 결혼하는 거지 왜 안할라카노! 요즘에는 두 번 세 번 재혼도 흠이 아니라 카더라! 할머니가 티브이에서 다 봤구만은!"


 그러면 나는 으레 티브이 좀 그만 보세요, 하고 낄낄 웃고는 딴 얘기로 말을 돌리는 것이다. 근의 대화는 늘 이런식이었다. 할머니가 한 20년만 더 젊었어도, 그만하시라고 진지하게 화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를 내게 추천하고 있음을 안다. 노인의 호의를, 단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화내며 거절하고 싶지 않다. 성격 까칠하다고 평가를 듣는 나로서는 드물게도, 웃으며 상황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대 놓고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남자가 불쌍타 아이가. 니만 졸졸 따라댕기고, 일면식도 없는 할매 집에 와서 고양이 똥도 치아주고, 우리 손주 승오랑도 그래 열씸히 놀아주고... 근데 니가 결혼을 안 해 주면 되것나. 결혼도 해 주고, 그 남자 애도 하나 낳아주고 해야지."


 거듭 말하지만 할머니가 20년만 젊었어도... 하하.


 하지만 나는 설득하기에는 충분히 늙은 할머니를 이해한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세상에서 살아온 그녀를, 자신이 죽은 뒤 승오와 내가 살아갈 모습이 걱정되어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는 그녀를, 돈은 다 뺏기고 없으니 남은 것 중 뭐라도 퍼주려고 애를 쓰는 그녀를... 그래서 그냥 웃고 마는 것이다.


 "결혼이 그리 좋으면 할머니가 또 하면 되겠네!"


 내 말이 어이없었는지 할머니가 한참을 낄낄 웃으셨다. 비록 허리와 무릎이 굽어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화통화로 농담도 할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친 의문이 있어 곧장 물었다.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시간이 오래 지났잖아요. 할머니는 왜 재혼 안 했어요?"


 "하이고오~ 말도 마라잉! 내는 남자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다! 느이 할아버지 하나로 충분히 고생했다아이가. 내가 쎄가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다 놓으면, 몰래 훔쳐다가 술 먹으러 댕기고... 아~들 간식 사맥일 돈도 없는데, 그노무 남편이라는 시끼가 돈 다 갖다가 술쳐먹고... 마지막에 술병 나서 죽었다 아이가. 장례 치르면서 무신 생각 했는지 아나? 시밸롬이 만날 술 처먹으면서 오래 살기는 드럽게 오래도 사네."


 욕이 너무 찰져서 절로 깔깔 웃음이 났다.


 "거 봐요. 할머니도 안 할 거면서. 그래도 할머니 혼자서 애들도 잘 키웠고요. 뭐, 할머니 자식농사는 좀 망한 거 같지만, 그래도 손자 농사는 잘 지었지. 거기다 증손주까지 봤잖아요. 좋게 좋게 생각해요~ 나도 할머니처럼, 혼자서도 굳세게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구요."


 우리는 한참 전화기를 붙잡고 떠들었다. 밤 열한 시. 전화를 끊고 잘 준비를 하는 나에게 남자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이번 주말에 할머니 댁에 또 들를까? 먼저 가자고 말해주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 모른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늘 혼자 다녀오려 하고, 남자친구는 괜찮으니 자기도 같이 가자고 한다. 걷기 힘든 할머니를 두말 않고 부축해 주는 내 아들 승오, 쉬고 싶을 주말에 할머니 집에 찾아뵙자고 먼저 말해주는 남자친구, 기초 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쌀이며 휴지라도 가져가라고 자꾸 뭘 챙겨주는 할머니... 이렇게 행복하기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마음 가득 들어차 슬픔이 끼어들 틈새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