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ome Bassil Feb 13. 2024
커피는 본래 살구 복숭아 자두와 같은 핵과식물이다. 대부분의 핵과 식물은 당분이 많은 과육을 먹고 두꺼운 껍질에 숨어있는 씨앗은 버리거나 파종하거나 종종 볶아서 채유를 하기도 한다. 커피가 독특한 것은 '카스카라'라는 말린 과육을 차로 우려내 마사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커피로 내려 마시는 건 과육을 벗겨낸 생두라는 씨앗을 볶아 만든 원두이다.
생두는 밀도가 높아서 웬만한 돌덩이만큼이나 딱딱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향이 아닌 지푸라기나 풀향기, 비싼 건 말린 과일향이 나고는 한다. 이 생두가 원두가 되어 오감을 만족하게 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성급히 커피로스터기에 털어 넣고 볶으면 예열하지 않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음식을 볶는 것과 같은 꼴이 되어버린다. 충분한 예열로 적당히 열이 오른 커피로스터기에 생두를 넣고 볶으면 긴 시간 높은 온도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밀도로, 맡을 수 있는 향기로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켜 준다.
커피는 인생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급히 결과를 보려고 허둥대지 않고 순리에 따라 준비하고 적실한 때에 적실한 액션을 취해야 오래도록 달려갈 수 있는 것처럼 커피를 볶는 과정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커피는 열이라는 에너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면 저절로 볶아지지 않는다. 열은 커피를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줄 만큼 강력하다. 커피는 그 열로부터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간에서 온전한 변화의 완성이 올 때까지 극한에 처해진다.
소위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로스팅의 이 가혹한 메커니즘은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를 극한의 환경에 몰아넣고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배수의 진을 치고 여기서 끝장을 보자' 이런 결기에 불을 지피는 에너지가 커피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차이라면 사람에게 그런 계발욕구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 반면 커피에게 자신을 위한 선택의 폭은 없다. 이 땅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모든 동식물이 그렇듯 커피는 인간을 위해 변화될 뿐이다.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저 인간을 위해 맛을 내고 향을 낸다.
사람은 그럴 수 있을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끝장을 볼 때까지 배수의 진을 치고, 자기가 변화되도록 내어줄 수 있을까? 사람이 커피 같이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은 아마 위인들로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레벨을 훨씬 뛰어넘어 초인의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인생은 악취가 나거나 무색무취하거나 밋밋한 향미가 아니라 존귀하고 신비한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