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SCI-FI APPAREL (2)
『YOUR SCI-FI APPAREL』은 옷과 글로 동일한 SF 모티프를 구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패션 브랜드 요클YOKEL과 출판사 잇다름ITDAREUM이 함께합니다.
그간 책을 펴내면서 소재가 좋은 책은 무조건 팔린다는 걸 느꼈다. 시의성 있는 소재를 고르면 마케팅 없이 단순 검색만으로도 어느 정도 판매가 된다! 그러니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소재부터 잘 골라야 한다.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분야라면 '사람들이 요새 이걸 좋아하는구나' 싶은 주제를 직감만으로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깊게 알지 못하는 분야도 방법은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 등 키워드별 검색량을 보여주는 서비스부터,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엑셀 저장 기능을 제공한다), 트렌드 리포트 등 참고할 만한 자료는 많으니까. 정량적인 데이터를 참고한다면 글의 범위 안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소재를 잘 팔릴 것으로만 고를 순 없다.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주제나 큰 방향성이 이미 정해져 있어 소재를 바꿀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에세이나 소설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 장르들의 경우 글의 시발점이 바로 그 소재 안에 있다. 다시 말해 그 소재를 버린다면 글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잇다름에서 곧 선보일 『이계절의 말라위』는 유네스코 국제개발사업을 위해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천일 간 체류한 경험이 주요 소재다. 외국어 교재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 국외 교류가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서 해외 개발사업이라는 소재가 팔리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제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긍정적인 의미로).
이렇게 소재가 이미 정해진 경우에도 생각할 거리는 여전히 한참 남아있다. 글을 편집하고 셀링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주로 글의 요인을 아주 거칠게 '시장성'과 '완성도' 두 가지로 나눈다. 얼마나 잘 읽히고 흥미로운가? 얼마나 문체가 아름다운가? 소재가 독특한가? 이런 질문들이다.
결국 이 모든 질문들은 대상 청중(target audience)을 누구로 설정하였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30-40대 중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대상인지, 웬만한 고전은 모두 섭렵한 독서 마니아가 대상인지에 따라 같은 주제와 소재더라도 180도 다른 글이 만들어지니까. 대상 청중이 결정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답이 나온다.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을 내리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할 질문이 있다. 출간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의 우선순위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출간하려 하는 걸까?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글인가? 사회적으로는? 그리고, 이 책을 냄으로써 난 뭘 얻고 싶은가? 돈? 커리어 구축?
답변에 따라 책의 방향은 확연히 달라진다. 커리어 구축을 위해서라면 대중성을 약간 포기할 수 있을 테고, 금전적인 보상을 위해서라면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대부분 생각해보시지 않은 질문인 것 같다. 여쭤보면 글을 쓰시는 많은 분들이 그저 모호한 인상으로, '많이 팔리면 좋다' '좋은 글을 만들고 싶다' 정도로 답하시곤 하는데 그 안을 파고들어 보면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 지점을 통해 우선순위를 정립한다면 부차적인 질문들에는 자연스럽게 답이 내려진다. 출간을 결심하고 글을 쓰기 전 우선순위에 관해 생각해보신다면 고민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다시 내 글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다. 「YOUR SCI-FI APPAREL」 프로젝트에서 진행 중인 SF 소설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글이다. 그러니까,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자체가 제일 중요한 목표다. 출판과 패션의 협업 가능성, 소설가로서 나의 가능성, 그리고 SF가 한국의 문단 문학에 새로운 계기가 되어 줄 가능성(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꼭 글을 쓸 생각이다) 등.
욕심이긴 하지만 실험성과 시장성 모두를 가져가고 싶다. 우열을 매긴다면 가능성 탐구(실험성) 쪽이겠지만, 어쨌건 이 시장의 확장 가능성도 알아보고 싶으니까.
그래서 난 이 글을 실험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방식으로 작성해보려 하고 있다. 시의성 있는 소재와 실험적인 소재를 한데 섞고, 과학과 철학과 문학을 엮는다. 내용이 어려우면 문투를 쉽게, 문투가 화려하면 그 안의 내용은 이해하기 편하도록. 그게 지금의 방향이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늘 이 글은 정말 쉽게 쓰였다. 그간 부딪히며 몸으로 배운 것이 있어 그런 듯하다.
긴 서론에 비해 본론이 짧아 약간 민망한데, 이 본론을 위해 아주 긴 서론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