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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현 May 02. 2022

"나, 사실 엄마한테 호르몬 테러를 당해."

망상장애를 겪는 퀴어 청소년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 『호르몬 소년』

한 사람의 일생을 그저 특징이나 이력의 교집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겠죠.

삶은 특징과 이력 사이의 여백, 그 안 어딘가에 존재하니까요.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막막한 심정이 드는 것도 그때문이지 않을까요?

빽빽이 문자로 적힌 이력서 속에서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얼마나 보여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요.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소개할 때 이런 장치들이 유용한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뭉뚝하게나마 소설 『호르몬 소년』의 주인공, 상현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일종의 이력서라고 생각해 주세요.



권하현 소설 「호르몬 소년」



주인공 상현은, 

            피아노를 전공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 퀴어지만, 여자와 남자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확신은 없습니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요.          

            학대를 당하지만, 청소년인 그의 힘만으로는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망상장애를 진단받습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그의 상상인 걸까요?          



상현의 이력서를 찬찬이 훑어 봅니다.

아마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고 있겠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력서에서 또 한 가지 문제를 찾아내게 됩니다.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그가 스스로 진술한 이야기를 우리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나, 사실 엄마한테 호르몬 테러를 당해."



피해자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진술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중 상당수의 진술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고,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을 묵시적 진실로 생각하고자,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노력합니다.


이 경우에는 어떨까요.

상현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여성호르몬을 먹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호르몬 테러"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쉽사리 믿기는 어렵습니다.


볼록했던 가슴이 들어가고 잘록해졌던 허리가 평평해지고 펑퍼짐했던 엉덩이가 작아졌다. 하지만 가슴에 생긴 멍울은 여전히 아팠다. 나는 병원에 가고 싶었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만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 이게 밝혀지면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아마 제목은 이럴 것이다. 「16년간 벌어진 교묘한 독살」. 뭐 이런 제목으로 TV에 나오겠지. 엄마는 대체 언제부터 나에게 호르몬을 먹인 걸까. 어쩌면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나는 미친 걸까?



그의 말은 과연 진실일까요?

이 의심과 혼란이 『호르몬 소년』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편집자의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상의 『날개』는 분열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의 독백을 따라 흘러갑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왜곡된 서술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혼란을 겪습니다.


『호르몬 소년』 또한 마찬가지의 트릭을 활용해, 독자들이 심리 추리 퍼즐을 풀어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정말 상현을 불러낸 선생님에게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는지,

어머니가 호르몬제를 먹인 것은 사실인지.

......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주인공 상현 본인마저도요.


그렇다면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이 소설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작가 권하현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글을 마주하는 것은 병을 숨기기 위해 약을 먹고, 
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고, 
그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약을 먹는, 
그런 무의미한 반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언합니다. 
당신이 나의 이 기록을 통해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보리라고. 
한 인간의 한 소년의 한 인생의 분투를 보리라고.



망상장애를 앓는 퀴어 청소년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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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끼의 식사, 한 권의 책"이라는 슬로건으로 출간될 <한끼문고> 시리즈의 첫 도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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