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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현 May 16. 2022

두 번째 소설을 펴내며

망상장애 퀴어 청소년의 고통과 성장. 소설 『호르몬 소년』

중학생 작가 김유리님이 쓴 청소년 SF 소설, 『보이지 않는 신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시작으로 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어제 펀딩을 시작한 소설 『호르몬 소년』을 두 번째로 잇다름에서도 꾸준히 소설을 펴내어 보려 한다.


『호르몬 소년』 북 트레일러. 목소리는 클로바더빙으로 제작한 AI 보이스인데 나보다 더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호르몬 소년>의 주인공 상현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중학생이고, 바이섹슈얼이며, 홀어머니 아래서 학대를 당한다. 상현은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상태로 부유한다. 전공인 피아노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정확히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태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주인공 상현은 고립되어 있다. 어머니는 그를 학대하며, 의지할 수 있는 어른도 없고, 마음을 터놓을 만한 깊은 관계의 친구도 없다. 그의 망상장애는 어쩌면 그 고립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원고를 펴내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원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장의 문제였다. 이 책은 딱 잘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퀴어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처절하고 애뜻하다든가 하는 사랑 중심적인 느낌이 아니다. 또, 선생님과 미성년자 학생의 관계에는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윤리적 문제가 분명 있다. 그렇다고 학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단언하기엔 주인공 상현의 내면에서 어머니로부터의 학대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있어 가장 중심이 될 만한 소재는 상현의 망상장애다. <호르몬 소년>은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상현의 망상장애는 실제 소설 속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도록 한다. 그 점이 이 책을 일종의 심리 스릴러처럼 기능하도록 만든다.


모두 재미있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 '모두'라는 말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상현이 겪는 사건들과 문제들을 한 가지로 묶을 만한 키워드가 생각나지 않았다. 타겟을 설정하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정석대로 팔리는' 퀴어 소설에는, 특히 청소년 퀴어 소설에는 사랑에 한껏 몰두하는 두 청년이 등장해야 한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언젠가 주워 들었던 이야기인데, 게이 콘텐츠는 '여름', 레즈비언 콘텐츠는 '겨울'이라고들 말한다고 한다. 영화 『캐롤』이라든가 『윤희에게』 등 대표적인 레즈비언 영화들 중 겨울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가 많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의 게이 콘텐츠가 여름을 배경으로 한 반짝이고 열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퀴어 콘텐츠라는 장르 안에서도 어떤 도식과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고, 사실 '팔기' 위해서는 그런 도식을 따르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다. 퀴어 소설의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상태에서 '퀴어 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었다. 또 한편으론 '성장 소설'을 주로 잡자니 '망상장애'라든가 '학대'와 같은 키워드와 어우러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고민을 꽤 오랫동안 했다.


사실 현실 속의 인간들도 보통 딱 한 가지 문제만을 겪는 건 아니다. 문제가 하나 생기면 다른 문제가 또 따라온다. 돈이 없다면 무리하게 일을 한다든가 병원을 가지 않아 건강이 나빠진다든지 하는 문제가 따라온다. 심적으로 불안정하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쉽게 생긴다. 상현의 문제가 가진 인과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오히려 현실의 구조를 충실히 재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도서 출간의 문제로 돌아와, 나를 결심하게 한 것은 결국엔 원고 자체였다. 처음 원고를 받고서는 샤워를 하면서까지 글을 읽었다. 그러고서 앞서 구구절절 말한 이유 때문에 계속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거의 한 달이 지난 후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원고가 생각나는 게 아닌가. "이정도면 그냥 사비로라도 내야겠다"고 그때 생각했다.


또 한편으론 이렇게 시장조사에 집착해봤자 결과는 단언할 수 없겠다 싶었다.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그리고 만약에 실패한다면 그 다음의 배움을. 겁내지 않고 일하고 싶어 『호르몬 소년』을 펴내기로 했다. SNS라든지 활용할 수 있는 소스가 적어 새로운 마케팅도 몇 가지를 시도해보고 있다.


펀딩 2일차인 오늘, 다행히도 사람들의 취향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1일차인 어제 얼리버드 물량이 모두 소진되었다. 어제부터 다른 구성의 얼리버드를 물어보시던 분들이 계시기도 해서, 2일차인 오늘 처음으로 2차 얼리버드를 열었다.


아직 큰 성과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지만, 어쨌든 펀딩은 아직 33일이 남았고 제일 중요한 출간 제반 작업도 멀었다. 공부하고 역량을 가다듬어 가며 계속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행해보려 다짐하고 있다.


https://tum.bg/49b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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