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 Sep 19. 2019

엄마와 요리 1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하여

  어떤 느낌이나 장면을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 있다. 나는 ‘엄마’가 그렇다. 이 말을 들으면 일단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다음은 잔뜩 기름진 공기 냄새, 그다음은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 같다.

  하필이면 엄마라는 말에 이런 것들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간단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나의 오감을 자극한 가장 다수의 상황이 바로 그때였다. 엄마가 요리할 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함께 있을 때 대부분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이제는 나도 조금은 이해한다.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것의 절반은 어쩌면 먹이는 데에 있을 수 있었다. 어린 존재는 뭐든 먹여야 자라니까. 나도 한 때 그것에 열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 주변에 엄마가 된 이들을 봐도 어른이야 한 끼는 대충 먹어도 되지만 애는 매번 뭐라도 있어야 한다며 매일의 끼니 고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생명의 성장기는 영원하지 않다. 물론 정신적 성장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일단 육체적 성장은 어느 순간 다하면 이후 긴 시간에 걸친 노화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이렇게 성장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도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어른’이다. 혹시 어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는가? 나중에 한번 찾아보시라. 꽤 재미있다. 그중 첫 번째로 나오는 뜻은 이렇다.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보통 만 19세 이상이면 우리는 다 자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 자랐으니 이제 엄마들도 사실 더 이상 자식을 먹이는 데에 열중할 필요가 없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여기에서부터 부모의 역할도 끝이 나야 맞는 것이다. 자식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많은 자식들이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의 아래에서 살아가며 부모 역시 자식을 쉽게 놓지 못한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다 자란 이후에도 무려 13년여를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이른바 독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 독립을 전혀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밥 먹으라는 말이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밥 먹을 거야?”, “아니. 안 먹어.”, “안 먹는다고? 왜?”, “그냥 지금은 먹기 싫어.” 이런 말을 계속 주고받는 데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외의 엄마의 어떤 관심들도 때로는 간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 이제 나는 따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바로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집에서 나가고 싶으면 결혼해. 여자는 결혼하면 나가는 거야.”

물론 그것 때문에 당장 아무나와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엄마의 말을 거스르며 당장 집에서 나갈 당찬 마음도 패기도 없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고 부모님 곁에서 독립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내가 왜 이제야 집에서 나왔을까 싶었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것들을 다 스스로 해야 하니 뭔가 어설프고 힘에 부치는 느낌도 받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안타깝게도 ‘일시적’ 독립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낳고 나니 사실상 모든 것들이 되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혼자서 하는 육아를 버거워하는 나를 위해서, 또 손주가 너무 보고 싶었던 부모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집으로 찾아오셨다. 나도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외롭기도 했고 나도 떨어져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으니까. 

  문제는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나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손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올 때부터 이것저것을 잔뜩 싸가지고 오더니 부엌에 잔뜩 부려 놓고 끊임없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계속 등만 보이면서.

  “엄마. 그만하고 이리 와. 나 보고 싶었다며. 손주 보고 싶었다며. 나 엄마 얼굴도 못 봤어.”

  “응, 알았어. 잠깐만 이것 좀 하고.”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달려왔으면서 엄마는 왜 계속 저렇게 요리만 하고 있을까. 공간만 바뀌었을 뿐 내가 독립하기 이전의 장면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이것은 갑자기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내가 더 이상 육아를 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집으로 찾아가면 엄마 얼굴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계속 뭔가를 먹어야 했다. 한동안 나의 불행한 일 때문에 함께 상처받은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뭐든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이런 상황이 점점 또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서 헤어질 때 잔뜩 애틋한 것이 아니라 “너 이거 싸 갈래?”, “아니.”, “왜? 가서 먹으면 좋잖아.”, “여기서 계속 먹었잖아.”, “가서는 어쩌려고?”, “내가 알아서 할게.” 하다 결국 서로 얼굴 붉히고 어색하게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쯤 되니 나는 좀 많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엄마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다.


  맞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부 다 사랑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면 사랑을 주고 있는 사람과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선호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젖먹이였을 때의 나와 십 대였을 때의 나, 어른이 된 후의 나는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에는 달라짐이 없었다. 여전히 끼니때 아무 거나 먹이면 안 될 것 같고, 한 끼라도 안 먹이면 큰일이 날 것 같고, 엄마의 눈에는 그러니까 내가 영원히 어린, 아직도 자랄 것만 같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사실 나는 이제 전과는 다른 사랑을 받고 싶은 어른이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제 너도 이만하면 혼자 잘할 수 있다는 지지와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들. 아니 사실 이런 것들도 다 안 되는 것이라면 그저 나란히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한 것. 곁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더 보는 것.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있고, 한 번이라도 더 손 잡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나를 그런 방식으로 사랑해 왔다. 상황이 그랬고 환경이 그랬고, 아니면 나의 엄마는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엄마는 자식을 다르게 사랑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어디서 새로 배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왔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우리가 남녀였다면, 아니 그냥 남이었다면 사실 여기서 더 버티지 못하고 헤어졌을 것이다. 사랑을 계속 준 사람은 배신감에 떨었을 수도, 또 받은 사람은 잠시 후련해졌다가 곧 또 그 사랑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피로 맺어진 관계이다. 그런 관계는 그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점점 내가 엄마에게 연락하는 횟수도, 또 찾아가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렇게 완전한 독립을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어른이니까.

상하기 전에 다 먹어야 할 텐데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