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39살. 곧 나이의 앞자리 수가 또 바뀐다. 그런데 모두에게 빠짐없이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시기들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꽤나 흔들어 놓는가 보다. 특히 서른, 마흔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어찌나 여기저기에 많은지. ‘서른 즈음에’, ‘마흔에 대하여’,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몇 가지 제목들을 댈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내 나이의 앞자리, 그러니까 십의 자리 수 변화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현재보다는 앞날을 걱정하는 삶을 살았으면서. 19살 때까지는 20살 대학 입학 때문에 살았고, 30살 때까지는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 살았고, 30살 이후에는 앞으로 지금보다 잘 살려고 살았다. 그렇게 대부분의 날들을 앞으로는 어쩌지를 생각하며 살았으면서 뭔가 앞뒤가 안 맞게스리. 나에게 나이의 변화란 그러니까 12월 31일 밤에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1월 1일이 되어 있는 그 정도의 변화랑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일의 자리가 아닌 십의 자리가 바뀐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앞자리 4는 뭐가 정말 많이 다른 것인지 잊을 만하면 주변에서 자꾸 생각하라고 한다. 신체적으로는 하나둘씩 아픈 곳들도 생긴다 하고, 체력도 부쩍 떨어진다 하고, 또 결정적으로 40을 중년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이쯤 되면 한 번쯤 생각해야 하는 분위기다. 뭐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크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면 나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일단 신체적인 변화는 정말 그러한가 보다. 신체는 어쩔 수 없이 남녀를 따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으니 남자들은 모르겠고, 주변 언니들의 진솔한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정말 뭔가 훅 간 느낌이라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병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급기야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칭찬받기에 이른다. 사실 나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운동하면 재미있어서 그런 건데. 이렇게들 얘기해 주신다면 뭐 하나 얻어 걸렸나보다 싶다.
이렇게 하나는 비교적 금세 정리가 된다. 앞으로 아플 일이 늘어난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자. 일단 운동은 즐겁게 하고 있으니 당분간 계속 이렇게 살자. 그런데 문제는 40부터 중년이라는 말이 그렇게 종종 헷갈린다. 누구는 요새 같은 100세 시대에 40이 무슨 중년이냐며 아직 한참 젊다고도 하는데, 또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때 봤던 40대들을 생각하면 별로 안 젊은 나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의 시대에 중년이란 무엇인가. 한참 고민하고 떠올려 봐도 뭔가 딱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인 것인지 시기가 좀 묘하게 요새 어디를 가면 종종 외로울 때가 생긴다. 아래와 이야기할 때는 또 그 나름대로 이해가 가고, 위와 얘기할 때에도 또 그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든 자의든 타의든 뭔가 다리가 된 느낌이다.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은 일정 시간이라도 아래와 위가 한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게 한다.하지만 그러다 결정적으로 아래는 아래들끼리 위는 위끼리 모이게 되었을 때 중간은 어디에 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땐 아래에 어떨 땐 위에 끼게 되는데 그때의 내가 어떤지 너무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그 모습을 내가 볼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이것도 상황마다 다르지만 일단 중간이 아래에 오래 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국 겉도는 걸 보게 된다. 왜냐하면 중간이 아래에 끼면 이제 더 이상 중간이 아니니까. 아래의 위가 되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에 굳이 끼어 있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떨 땐 눈치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위에 끼는 중간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위에 중간이 끼면 그들은 더 이상 중간이 아니다. 다시 아래가 된다. 그렇게 되면 뭐 때에 따라서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귀여움을 발산하게 될 수도, 혹은 위를 존중하느라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척하다 한껏 지루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은 나이는 아니니 마냥 어리게 굴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계속 성숙하고 예의 있게 굴기에도 지친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참 놀랍다. 아직 본격적으로 4라는 숫자를 앞에 단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것을 느끼고 있었다니. 어쩜 나에게 중년은 이미 슬슬 시작되고 있었나 보다. 그러면 내년부터 땅 하고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면 이제는 달라진 앞자리를 빼도 박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 자꾸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이제 이런 중년이 길면 20년 정도 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쩌나.
그런데 다행인 것인지 내가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에게는 지나가 버린 과거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이,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길 수도 있는 그 중년이라는 것을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현재의 내 귀중한 시간에 어떻게든 아래에 맞춰 보려고 아등바등 무리하기 싫다. 또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맞이하게 될 위의 시간을 원래보다 더 빨리 맞이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결심했다. 내가 중간이라도 아래와 위의 윤활유 같은 뭐, 그런 역할,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도맡아서 하지 않겠다. 왜 중간이라고 꼭 그래야만 할까. 대신 나는 이제 나와 같은 나이의 앞자리를 단 수많은 사람들을 먼저 둘러볼 것이다. 중간에 있는 나는 분명 또 혼자가 아닐 테니. 그러면서 나와 나의 한때를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한 덕분에 이렇게 당찬 포부가 또 하나 생겼다. 친구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