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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Oct 08. 2019

관계에도 업데이트가 필요해

모든 것은 알 수 없어도

  대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을 위해서 교양 과목의 학점을 채우려고 골라 들었던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사랑의 심리학’이었다. 처음에는 이름만 보고 무슨 연애에 대한 내용인가 싶었는데 수업 내용을 자세히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부모 자식, 부부 등 가족 간의 사랑이나 나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갖가지 형태의 사랑에 대해 한 학기 동안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수업은 시작부터 예상 밖으로 진행되었다. 사랑에 대한 얘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일단 각자의 성격부터 검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맞춰 같은 유형의 사람들끼리 모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성격적으로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지 파악해 보고 또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어땠을 때 어려움을 느꼈는지 경험들을 공유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그 과정이 나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전까지 사랑이라는 것은 그저 좋아하는 감정이 드는 것 정도인 줄 알았다. 각자가 가진 기질이나 조건, 상황들이 만나서 부딪히며 생기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고 시작한 수업은 이후 나라는 존재가 사랑하게 되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뻗어 나갔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 수업의 교수님은 꼭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셨던 것 같은데 우리를 단순히 수강생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 후배로도 여기셨던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들을 많이 들어 주셨는데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되새기고 있는 것이 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막상 결혼을 했더니 이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어찌 보면 그건 사실 당연한 거예요. 결혼이라는 것을 했잖아요. 그런데 그전이랑 후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어요. 상황이 변했는데.”

  나는 그때 이런 말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당시 적었던 경험과 나의 사고 수준으로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변했다는 건 곧 배신이었다. 변했으니 우리 사이는 이제 그만, 끝,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뭔가 있을 수 있다니. 그날 이후 그 말은 나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이어지는 인간관계들에서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주었다.

  일단 남녀 관계에서는 그랬다. 상대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여전한데 이상하게 갈등이 생길 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엇인가가 변해 있었다. 그 변화는 그날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 같은 다소 사소한 것일 수도 있었고 어떤 때는 유학이나 취업 같은 신변의 변화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뭔가 각자의 상황이 변할 때마다 관계의 형태 역시 변화했는데 문제는 이것을 각자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방식 또한 여러 가지였다. 그런 차이들이 서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영영 멀어지더니 영원히 끝나버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날 또 알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성 간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이어가는 관계에 대부분 적용되었다. 분명 틈만 나면 만나고 붙어 있던 친구 사이었는데 각자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혹은 아이를 낳으면 상대는 어느새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혹은 내가 상대에게 그렇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관계를 전과 비슷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이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거나 노력했는데도 쉽지 않은 경우에는 당연히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 이는 부모님과도, 직장 동료와도, 심지어 취미 생활, SNS 등 자발적으로 뭔가를 찾아서 하다 만난 사람과도 전부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어떤 관계든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변화에 대한 업데이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업데이트 파일이 가끔 한두 개 등장할 때에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고 견딜 만한데 문제는 이게 갑자기 몇 백 개로 늘어났을 때는 무척이나 버거워진다. 이러한 상황은 대개 그 사람이 처해있던 어떤 상황이 매우 급변할 때 발생한다. 나의 경우도 보면 몇 년 사이 갑자기 직업도 바뀌더니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사회적 활동도 시작했고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도 바뀌었다. 그러니 나와 쭉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특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갑자기 자신 앞에 떨어진 수 백 개의 업데이트 파일을 보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그에게 그랬듯이.


  그래서 우리 같은 경우에는 이 과정이 과연 언제 끝나는 것인지, 또 끝나기는 끝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중간에 몇 번이나 그냥 전원 버튼을 누를 뻔했다. 사실 지금도 서로 업데이트가 어디까지 된 것인지 잘 모르겠고 심지어 다 끝냈다고 해도 막상 새로운 버전이 어떨지도 잘 모르겠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새로 받아 놓고도 써 보니 불편하다고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기도 하더라. 그만큼 모든 것들은 다 불명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번 버전의 업데이트를 끝까지 다해 볼 의지가 있다면 중간에 전원을 꺼서는 안 된다. 껐다가는 영영 다시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다시 켜질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그러려면 전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또 아무리 그래도 이번만큼은 전원을 꼭 눌러야겠다고 한다면 그 선택의 결과 또한 견딜 만한 것이기를.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전보다 뭘 좀 알게 된 것 같아도 실제는 또 다른 문제이니까. 그저 매번 잘 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잘 되기를 빌고 있는 것도 같다.

이 정도만 된 것이어도 좋겠다.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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