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도중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우리반 부반장이 연락이 왔다.
내가 핸드폰을 바꾸고 유일하게 남겨놓은 4명중 한 명이었다.
“경희야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진짜 놀라면 안돼!”
“뭔데?”
“A가 자살을 해서 지금 XX 병원이야. 담임선생님도 와 계셔.“
나는 그길로 시험공부를 팽개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하고 그 아이의 빈소가 위치한 곳으로 갔다.
반 친구들이 모두 와 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흔한 음식들 조차 차려지지 못했다. 친했던 아이들은 반창회를 빈소에서 한다며 울고 또 울었다.
장지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부터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아이와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날 이후로 폴더폰에서 스마트 폰으로 바꿔 친구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했다. 고1, 내가 반장이었던 우리반은 그랬다. 가정방문도 했었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얼굴도 알고 있엇다. 나에겐 한명 한명이 귀했다. 나는, 도대체 뭘 위해 공부를 한 것일까? 공무원이 된다면 나는 국익을 위해,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슬픔으로 앓았다. 그 친구의 영정사진이 잊혀지지 않아서. 보고싶은 사람을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나는 살면서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원망이 들기 시작했다. 왜, 사람은 죽어야만 할까? 그래서 나는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따고,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다시금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를 했고, 나이에 밀려 대학교를 다시 복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돈을 벌면서 “무엇을 위해 버는가? 어차피 나는 죽을텐데?”라는 허무함에 빠져 술을 많이 마셨고, 살이 80키로까지 쪘었다. 나는 오히려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기에 그동안 연락하던 친구들을 끊어냈다.
그 친구들은 내가 잘 되어서 친구관계를 끊은 줄 안다. 근데, 나는 내가 초라한 것을 보이기 싫었다. 내가 그렇게 살면 내 친구도 영향을 받을까봐. 나는 그렇게 혼자 술을 마셨다.
그러다 한 친구가 또 아팠다. 아픈데 말을 못해서 끙끙거리다 병 났다. 그 애를 살리려고 먹을걸 사서 서울까지 한달에 수십번을 왔다갔다 했다. 그런데, 아무소용 없더라. 시집가고 나니, 연락이 끊겼다. ”나 힘들다.“고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어쩌라고“였다.
친구들이 내가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닌데, 세월이 모질었다. 그 애도 그런 사람이 아닐거라 생각을 이제사 해본다. 다 지나갔기에, 나는 다음에 올 사람을 기다린다. 언제든 나는 엎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날의 나와 같으니까.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다. 많이 사랑한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