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관심의 표현을 제대로 못 할때면 초등학교 시절 남자애들이 생각난다. 6학년 때 한 남자애에게 발렌타인데이날 초콜릿을 주었고 그 애는 얼굴이 새빨개져 그걸 부끄러운듯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다. 내가 그 애에게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너처럼 열심히 하고 싶어, 친구가 되고 싶어”였다. 그 때는 장난끼도 많고 까불거리는 남자애들이 많았는데, 그 애는 달랐다. 모든 일에서 성실한 아이였다. 심지어 청소를 할 때도 열심이었다. 한 번을 비질을 해도 꼼꼼하게 했다. 손방인 나를 위해 왁스를 발라 기름걸레로 복도를 청소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잔소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는데 나는 다른 애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고마워도 무언가 사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특히 이성에게는. 아마도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던것이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어렴풋이 익숙함이 나의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면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은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 처럼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을 바라보며 가족의 정과 안정감이 나의 사랑이라고 느꼈다. 가끔씩은 누군가가 사소한 일로 잔소리를 하면 나는 “알았어” 라고하며 자리를 피해 그 자리를 모면했다. 어쩔때는 너무나 듣기 싫고 화가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상처를 주기도 했다. 남에게는 관심을 주면서 정작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그날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는 핑계로 그 당시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피한다고 내 행동이나 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뒤로 한 채 시간은 지나간다.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입이 닳도록 말해 고쳐주는 사람이 이제는 고맙다. 나의 잔소리도 어쩌면 미워서 하는 것 만은 아니다. 소설을 쓴 나의 행동을 후회하며 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세상에 악인이 없다면 내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가족같은 사람이길 바란다. 내가 여태까지 외로움 없이 버틴 이유가 가족들의 끊임없는 잔소리이면, 언젠가는 나도 새로운 가족을 얻어 잔소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이들에게, 같이 가는 이들에게 나는 굳이 공임을 들여 짜증과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사랑의 표현이 어쩌면 불편한 일 일수도 있다고 나이30줄에 깨닫는다.
하지만 바라던것을 포괄해 상대방에게 속박을주고, 누군가에게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폭행 폭언을 하는 것을 나는 범죄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의 도를 넘은 행동들을 돌아보며, 나는 나의 바운더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 팔꿈치들을 반대편 손바닥으로 잡으면 네모난 공간이 생긴다. 여기까지가 나의 영역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남이다. 나의 가족 역시 나의 행동 말투등 그 모든 것을 보듬어주는 이들이다. 사랑하는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돌아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잔소리 대신 따스한 눈으로 같이 가자고 그렇게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