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도 할 수 있다-!

자전축이 휘어져 재빨리 회전하는 지구속에서 나는 더딘 하루를 산다. 어느 아침, 느지막히 게으른 하품을 품어낸다. 나를 채근할 이는 아무도 없기에 나는 나의 하루를 오히려 온전히 갖는다. 이만큼 해 온 것도 잘했다고 나비어깨를 두드린다.


안고수비,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정해져 있는데, 할 수 없는 위치라고 나무랄 수도 있다. 혹자는 나에게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한 이“ 라고 나에게 비난할 수도 있다.


대학을 갈 때도 그랬다. 고3, 영어원서를 배우는 학원에서 나는 제일 뒤떨어진 학생이었다. 같은 반 학생의 말이 생각난다. 진도가 안나간다는 비난도 비난이지만, 나는 남들의 주관적인 의견에 휩쓸렸다. 그만 둘까를 수십번도 고민하다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실력이 확 튀었는데, 그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쟁쟁한 아이들이 많았던 터라 나는 중간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한번이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 되었다. 99도씨가 100도씨로 되려면 정체된 무엇인가를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성공, 그게 나는 자신감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다 막상 그것이 저버렸을 때,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열망, 정열, 그리고 시간을 들였던 모든 것들이 허무해졌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나는 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화려한 데뷔 대신, 누군가의 이름자에 잊혀질 수 있다는 현실에 좌절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나는 100을 투자해도 1밖에 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언어 분야가 완전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Broken Korean 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라 생각했다.


거기에다 나보다 잘나서 객관성 없이 지껄여대는 사람들을 대처할 수 있는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했다. 깡은 있는데, 유리심장이라 누군가 뭐라고 하면, 아무말도 못하는 호구였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소시오패스는 어디에나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상처준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해 끙끙거리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은 나를 위해 말을 해주는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에게만(예: 서로를 배려하며 같이 성장하도록 하는 사람들-가끔의 독설을 하는 분도 있다-)정성을 다한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이도 아닌데, 그걸 모두에게 적용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어떻게든 이겨내야지. 생각을 바꾸니 다른 세상이 보인다. 나는 수 없이 많은 도전을 통해 생긴 인생의 나이테가 있기에,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웬만한 여자들보다 나는 끈기가 있고 그만큼 강해졌다고 여긴다. 어머니들의 모성애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에 비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누군가 절망하면 기댈 수 있는 벽이 되리라 다짐했다.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 치부를 꺼내며 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또한 같이 가기 위한 길임을 되뇌인다.


또다른 사람이 온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교집합 처럼 합쳐진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칠전 팔기의 인생, 서막일지도 모르는 나의 젊음이 이렇듯 펼쳐진다. 어찌저찌 끼워맞춰 살아온 나는 당신의 굴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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