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뿐인 인생이라면 나는 신께 보란듯이 보여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꿈이라고.
내가 만약 내 신체를 물려준다면 어떨까? 가령 자녀를 가진다거나 나의 일부를 떼어준다면. 그리하여 내가 죽어 기억을 남긴다면, 그 기억을 물려 받은이는 나의 꿈이라고 정의 하고 싶다.
나의 죽음까지 사랑한 이가 있다면, 그건 기억을 하는 자의 몫으로 여긴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을 가진 채로 잉태를 시작한다, 그렇게 여긴다.
나는 쉬이 잊지 못한다. 그날의 습도 온기 햇빛 그 공간 그냄새 그 사람들. 발끝만 보고 산 나는 이제서야 사람들을 본다. 입 안에 제각각의 소원이 들어있는 이름자를 새긴다. 그들이 담고 사는 기억들은 끝이 존재할까? 망각이란 어쩌면 축복일지 모르는 삶 속에서 기억을 헤집는다.
오늘 역시 죽어가는 이들의 염원이었을 밤을 나는 그토록 원망하여 숨을 쉬었다. 삶이 영원의 끝이라면 나는 시작을 하지 않을 각오로 덤벼든다. 나를 기어코 살린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나는 어리석은지라 그 도리로 은혜를 갚으려 한다.
삶의 무료를 이탈하는 자들에겐 누군가의 지시나 방향잡이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의 몫의 생을 나는 축복한다.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기에.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나의 주변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황한 시간만큼 나의 어깨엔 주름가득한 짐이 지워졌다.
세월이 그러하듯 흘러가는 그리움은 원망할 데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살아낸다. 끝까지 살아낸다. 오갈데 없는하루를 버려가며, 나의 생이 다 할 무렵 더는 욕심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작별을 고하고 싶다. 버리는 일은 갖는 일보다 더 어렵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