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미는 그러하다. 내가 누구인지보다 누가 나인지를 반대로 찾는다. 내가 입는 옷, 화장 심지어 사상까지 나를 물들게 한다. 아이는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전에 늘 칭찬받을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마련이다. 사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른은 나이가 들었다고 생기는 직함이 아니다.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자녀를 낳게 된다면, 내가 쓴 글들을 보여줄 참이다. 나는 내 아이가 폐허뿐인 돈으로 점철되는 것을 슬퍼한다.
합리적인 인간은 비평에 익숙하다. 남을 비난하고 헐뜯어 깎아내리기보다,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다. 약간의 위트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뀌지 않았는데, 나를 감싼 외부의 모든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 현혹시키는 이야기들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역할인 해마를 키우기 위하여 무슨 노력을 했는지, 지켜보아야 한다.